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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슬램덩크’ 작가가 훑은 천재 건축가의 기발한 흔적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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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호 26면

저자: 이노우에 다케히코 출판사: 학산문화사 가격: 2만8000원

“창조는 신이 하고 인간은 발견하는 것이다.” 우아하고 기괴한 곡선과 다양한 자연의 이미지를 사용한 건축으로 회화의 피카소에 비견되는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1852~1926)의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천재성을 인정받고 있는 그의 건축물이 즐비한 바르셀로나는 가우디가 먹여 살리는 ‘가우디의 도시’라 할 만하다. 전 세계 여행자와 건축학도들이 천재가 남긴 기발하고 독특한 흔적을 보기 위해 모여드는 곳, 전설적인 만화 ‘슬램덩크’의 천재 만화가 이노우에 다케히코(45)도 가우디를 찾아 나섰다.

『pepita, 이노우에, 가우디를 만나다』

이노우에는 왜 가우디를 찾아 나섰을까? 그 답은 이 책의 제목 ‘Pepita’가 말해 준다. ‘pepita’란 스페인어로 ‘과일의 씨앗’이라는 뜻. 만화가로서 이른 나이에 정상에 올라 창작의 즐거움을 잃기 시작한 이노우에는 천재 건축가 가우디에게서 ‘창조의 씨앗’을 발견함으로써 자신을 반추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노우에가 찾은 가우디의 창조의 씨앗은 과연 무엇일까.

이노우에는 100여 점의 사진과 75점의 일러스트와 스케치, 그리고 작가의 스케치 모습을 담은 DVD영상으로 가우디의 ‘pepita’에 다각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맨 먼저 찾은 곳은 바르셀로나 교외의 몬세라트산. 살아 있는 거대한 생명체가 굽어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몬세라트산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충동을 느끼며 가우디가 받은 영감을 어렴풋이 짐작하기 시작한다.

가우디가 유년 시절 주말을 보낸 별장은 그저 흙과 풀의 감촉만 전해지는 자연 그 자체였다. 평소 도시에 살면서 집과 공방을 오가는 생활이었기 때문에 주말마다 별장에서 접한 자연에 강하게 끌렸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포블레트 수도원은 중학교 시절 친구 토다와 리베라와 함께 당시 황폐했던 건축의 복구 도안을 그린 중세의 수도원. 똑똑한 두 친구에게 그림 재능을 인정받고 가우디가 건축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계기가 된 장소이기도 하다.

구엘 별장과 카사 비센스 등의 초기 작품부터 카사 밀라, 카사 비트요, 구엘 공원에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까지 그의 대표작들을 돌아보며 확인한 가우디 창조의 씨앗은 역시 ‘자연’이었다. 광대한 구엘 공원 어느 한쪽에도 돌이건 벽돌이건 자연과 위화감을 주는 요소는 없었다. 카사 베센스의 벽면 박쥐 장식, 구엘 공원의 도마뱀 분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식물 장식 등 자연을 모티브 삼은 이유는 자연을 귀히 여기고 사람이 있는 곳에 자연이 필요하다고 여기며, 궁극적으로 자연과 동화되는 건물을 꿈꿨기 때문이다.

오직 자연에서 자신이 지향해야 할 길과 키워야 할 씨앗을 발견하며 자연과 완전히 일체 된 건축을 추구한 것이 가우디 작품세계의 본질임을 감안할 때 자연은 언제나 누구나의 곁에 있지만 거기에 씨앗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하게 된다. 현재 130년 넘게 짓고 있는 가우디의 대표작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그의 사후 100주년을 맞는 2026년 완공을 목표로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당초 성당의 탑을 기와나 돌로 지을 예정이었으나 현재 많은 문제점을 무릅쓰고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해 쉽게 가려 한다고. 가우디가 살아 있다면 과연 철근 콘크리트를 쓰려 했을까? 자연에서 창조의 씨앗을 찾은 이노우에의 마지막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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