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어렸을 때 배운 재밌는 영어가 발전된 형태 문법 습득 방해할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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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용호
기영인농어학원 원장

수능 모의고사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이 빠뜨리지 않고 질문하는 게 있다. 바로 어법문제다. 거의 대부분 학생들이 수능 외국어 영역에서 어법문제를 가장 어려워한다. 요즘 어법문제는 주로 문장의 구조를 묻는다. 해석을 제대로 하려면 다 알아야 하는 내용들이다. 어법문제를 어려워한다는 건 다른 지문도 제대로 독해를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객관식에서 정답을 찾은 지문도, 실제로 해석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이 특히 어려워하는 문장구조는 어순과 관련이 많다. 첫째, 문장에서 주어·동사·보어·목적어 등이 제 위치에 놓이지 않는 경우다. 가령, ① The book is interesting ② Interesting is the book : 문장 ①과 ②는 같은 의미지만, 문장 ①은 주어 + 동사 + 보어의 구조이고 ②는 보어 + 동사 + 주어의 도치 구조다. 상당수 학생은 ②의 구조에서 보어인 ‘Interesting’을 형용사가 아닌 동명사로 파악한다. 주어 자리에 ‘Doing’의 형태가 오니까 무조건 동명사인 주어로 인식하는 거다.

둘째, 문장 성분이 순서대로 놓이긴 했지만 중간에 다른 요소가 끼어드는 경우다. 가령 2011~2013년 수능 어법 문제에서 연속으로 출제된 다음 구문은 두 번째 원리를 응용한 문제다.

1. Some(S) of the dollars previously [spent / were spent] ~ have migrated(V) ~ (2013)

 2. A ship(S) [traveled / traveling] ~ lost(V) (2012)

 3. Persons(S) who ~ often achieving (→ achieved)(V) ~ (2011)

세 가지 구문 모두 주어와 동사 사이에 형용사구 또는 절이 끼어든 형태다. 문장에는 주어와 동사가 반드시 짝을 이뤄야 한다는 기본 형식을 묻고 있다. 이 문제를 풀 때 동사가 주어 다음에 바로 온다는 선입견이 강하게 작용하면 답을 찾기 어렵다. 이 선입견은 주로 영문법을 처음 접하면서부터 형성된다.

영어는 기본적으로 어순이 우리말과 다르다. 영어를 처음 배울 때 국어와 다른 어순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뿐만 아니라 달라진 어순이 또 바뀌거나 다른 요소가 중간에 끼어드는 것까지 처음부터 가르칠 수는 없다. 주어 다음에 동사가 오고, 동사 다음에 목적어나 보어가 나온다는 방식으로 가르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실 초등학생 또는 중1 정도 아이에게 문장형식과 어순 등의 문법개념을 완전한 형태로 가르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영어의 주어는 우리말로 해석했을 때, ‘은·는·이·가’ 목적어는 ‘을·를’이 붙는 낱말이라고 국어의 구조를 빌어 영어의 구조를 설명한다.

하지만 영어 문장은 영어의 틀로 이해해야 한다. 그 틀은 따지고 보면 지극히 기본적이다. 어려운 문장이나 어법 문제도 8품사, 문장 5형식, 문법단위(구·절) 등과 같은 기본 개념을 적재적소에 활용하기만 하면 제대로 이해하고 풀어낼 수 있다. 그런데 아이들의 실상은 답답하다. 고등학생들에게도 기초 문법은 문장을 이해하는 데 사용하는 편리한 도구가 아니라 시험 때문에 공부해야만 하는 골칫거리다. 그 이유는 아이들이 초기교육에서 습득한 쉽고 재미있는 영어가 보다 발전된 형태의 문법 개념이 자리 잡지 못하게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린 시절에 형성된 선입견과 편견일수록 무의식 속에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는다.

필자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와 바닷가로 낚시를 갔을 때의 일이다. 그 곳에서 물 위에 떠 있는 엄청나게 큰 ‘변’을 봤다. 아버지는 그게 거인의 것이고, 거인은 바닷가에 혼자 오는 아이를 잡아간다고 했다. 나는 그 후로 절대로 바닷가에 혼자 가지 않았고, 바닷가를 막연히 두려워했다. 사람의 것이 물에 부풀어 크게 보였다는 사실을 나는 서른 살이 된 후에야 깨달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아버지가 해준 그 거인 얘기를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마음 속 깊은 곳에 담고 20여 년을 살았던 거다. 아버지가 거인 얘기를 꾸며낸 이유를 깨닫게 된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다. 아버지는 내가 낚시에 재미를 붙여서 자기 몰래 바닷가에 갈까봐 두려워했던 것이다. 100점을 받아오는 아들에게 달리 줄 게 없었던 가난하고, 마음이 여린 아버지는 나와 함께 바닷가로 낚시를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거인 얘기를 지어냈던 거다.

기영인농어학원 남용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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