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서 아버지, 아들로 이어진 조선 왕족의 전통 국수 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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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양반들이 먹던 국수를 재현한 ‘일미칼국수’

1973년 서초구 반포본동. 중년 부부가 연탄불 위에 들통을 3개 올려놓고 뭔가를 끓이고 있다. 진하게 우러나온 국물을 그릇에 담고, 미리 삶아둔 면을 말아먹는다. 맛을 본 부부는 고개를 좌우로 저은 뒤 들통 속의 물을 전부 버린다. 각각의 통에는 조개와 닭, 사골이 들어 있다. 다시 세 개의 들통에 해물과 게, 멸치를 각각 넣어 끓인다. 이러기를 수십 차례. 다음날에는 지금까지 쓰지 않았던 새로운 재료를 사용한다. ‘이 맛이다’ 싶은 육수를 찾아내기까지 100일도 더 걸렸다. 부부의 고집이 세상에 하나뿐인 칼국수를 만들어 냈다.

글=전민희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자 노년의 부부가 기자를 맞이해줬다. 39년 전 가게를 창업한 이재홍(80)·이길자(66)씨 부부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이재홍씨가 방어진부터 쳤다. “밀가루 반죽 조합하는 건 알려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비법을 전수받으려고 그를 찾았던 걸까 짐작이 갔다. 비법 알아내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현재 가게를 물려받아 운영 중인 아들 이종화(39) 사장을 공략하는 편이 수월할 것 같다는 계산이 섰다.

 “맛의 비결이 뭔가요?” 슬며시 다가가 속삭이는 소리로 직구를 던졌다. 이 사장은 “출출할 테니 일단 칼국수부터 먹고 얘기하자”고 했다. 칼국수는 육수에 담긴 면 위에 다진 고기와 계란부침·호박·김·양념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잘 섞어 한 젓가락 들어올렸다. ‘응? 이게 칼국수라고?’ 면발의 굵기가 소면처럼 얇고, 길이도 20㎝로 짧았다. 쫄깃한 면발과 깔끔한 국물이 입 속에서 잘 어우러졌다. 지금까지 먹었던 칼국수와는 확연히 다른 맛이다. 의아함이 가득한 내 눈빛을 읽었는지 이 사장이 말을 이어나갔다.

 “조선시대 사대부 양반들이 먹던 국수입니다. 그때는 밀가루가 귀하고, 기계가 없었기 때문에 면발이 얇을수록 고급이었어요. 또 양반들 수염에 국물이 튀지 않게 하기 위해 면을 짧게 만들었죠.” 이 국수는 아버지 이재홍씨가 어린 시절 먹고 자란 맛을 재현한 것이다. 사실 그는 조선 9대 성종의 아들 15명 중 11번째 아들의 13대손이다. 그가 먹고 자란 게 곧 왕족의 음식이었던 셈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준 국수 맛을 떠올려 ‘일미칼국수’를 개발했다.

 “다른 국수와 뭐가 다른 건가요?” 기자의 질문에 이 사장이 “영업비밀”이라며 완강하게 나왔다. 주인장과 기자의 팽팽한 기(氣)싸움이 시작됐다. 육수와 면에 모두 비법이 숨어있단다. 이 사장은 하루에 한 번 밀가루·물·소금·콩가루 등 5~6가지를 넣고 직접 반죽해 칼국수 면을 만든다. 쫄깃함의 비결은 반죽과 숙성에 있다. 면을 칼로 썬 뒤 상온에서 1시간, 냉장에서 17시간을 숙성시킨다. 1.5배 정도 불어난 면을 삶아야 가장 부드럽고 탱탱하기 때문이다.

육수는 쇠고기의 모든 부위를 삶아내 만든다. 고기 부위별로 특성에 맞게 조리를 해야 고기 잡냄새를 없앨 수 있다. 12시간을 넘게 끓인 뒤, 들통에 형성된 기름막을 제거하면 깔끔한 국물 맛을 낼 수 있다. 비결은 또 있다. 바로 국수 면을 육수에 삶는 것이다. 국수에서 밀가루 냄새가 안 나는 것도 면 속에 육수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전통의 맛은 이렇듯 할머니에게서 아버지, 아들에게로 이어지고 있었다. 16년 전 건강 악화로 가게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을 때도 아들 이종화씨가 선뜻 나서 “가게를 물려받겠다”고 했다. 독일로 유학 가 배관설계사자격증을 따겠다는 꿈을 접어야 했지만 후회는 없단다. “어릴 때부터 먹어온 전통의 맛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앞으로도 제 능력이 될 때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이 맛을 보여주고 싶어요.”

Info 일미칼국수

가격 칼국수(8000원), 건짐국수(9000원)
주소 서초구 방배본동 778-8 (일요일 휴무)
문의 02-593-9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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