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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와 초가삼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국제저작권협정에 우리도 가입해야 한다고 문인협회가 들고 나왔다. 이「베른」협정에 가입한 나라는「유엔」가맹국의 약 반수, 나머지는 한국과 같은 무법의 낙원이다. 문협에서 제시한 이유는 모두 일리가 있다. 남의 것을 함부로 번역해 내고, 대개는 저속하고 추잡한 읽을 거리만 골라서 재탕해서 말아먹는 바람에 번역의도는 완전히 땅에 떨어지고 진지한 창작물이 햇빛을 볼 여지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설물의 결제 없는 수입과 중역 재중역의 폐단을 없애는 방도가「베른」협정의 구속을 스스로 감수하겠다고 나서는 것일까. 아주 정직하게 말해서, 보람있고 성실한 순수의 출판업자들이 번역해 내는 책은 대개는 저작권이니 인세니 하는 시끄러운 문제가 생길 수 없는 고전들이다. 외국의 대중 시사잡지에 나는 서평이나「베스트셀러」순위 표를 금과옥조와 같이 섬기고 일본신문의 광고 난에서 신탁을 구하는 다대수의 잡업자들은 우리가「베른」협정에 가입했다고 해서 해적판이며 중역 재중역의 날치기를 단념할 도덕 군자들이 아닌 것이다.
「베른」협정에 가입하지 않고도 우리는 그 내용에 약간의 손질까지 해서 대형백과사전을 송두리째 찍어내는 정도의 무법을 저지르진 않고 있다. 오히려 외국의 출판사와 선의의 계약을 맺고 복사면을 얻어서 사전류를 출판할 업자가 있다. 이같은 사전의 해적판이 동시에 나와서 쑥스러운 결과가 되긴 했지만, 외국의 저작권이나 판권이 침해되는 것을 막는 방도로서「베른」협정이 실상 맥을 추지 못하리라고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베른」협정 가입 문제는, 가입해서 우리의 저작용이나 판권이 얻을 이득이 남의 저작권이나 판권에 대해서 우리가 져야 할 의무를 능가할 단계에 가서 생각하면 된다.「베른협정」과는 관계없이, 최근 어떤 우리 작가의 작품이 국내의 고료에 비하면 가위 천문학적 숫자에 달하는 거액으로 일본에 팔려서 화제를 모은 일이 있다. 출판의 저속화를 막기 위해「베른」협정에 가입한다는 것은 빈대를 잡기 위해서 초가삼간을 불태워 버리는 격. 가입하지 않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슬기롭게 취득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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