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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군고구마 천사들, 12년째 구수한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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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군고구마 천사’ 아저씨들이 18일 퇴근 하자마자 군고구마 통 앞에 모였다. 올해 장사는 울산시 화봉사거리 북구청소년지원센터 부근에서 한다. 왼쪽부터 새벽 2시까지 군고구마를 파는 유수종·조수현·고태현·이원천씨.

17일 밤 11시 울산시 북구 화봉사거리. 40~50대 남성들이 군고구마를 팔고 있었다. 검정색 군고구마 통에 장작으로 불을 지핀 뒤 고구마를 구웠다. 통 옆에는 ‘12년째 군고구마 기적의 사랑’이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렸다. 고구마 값은 개당 1000원. 하지만 “나도 보태겠다”며 고구마 서너 개에 3만원을 내고 돌아서는 손님도 있었다.

 고구마를 팔고 있는 사람들은 신화엘리베이터 대표인 조수현(45)씨와 고태현(55·자영업), 유수종(50·목사)·이원천(41·회사원)씨 등 4명. 모두 직업이 있는 평범한 가장들로, ‘이웃사랑’ 모임 회원이다. 올해로 12년째 겨울철만 되면 거리로 나와 군고구마를 판다.

2001년 처음 군고구마를 굽기 시작한 이 모임은 지난해까지 8909만7290원의 판매 수익금을 올렸다. 모두 지역자활센터·사회복지공동모금회·개인 등에 기탁했다. 매년 겨울 직장 근무를 끝낸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밤잠을 설쳐가며 회원들이 직접 번 돈이다. 

 모임을 이끌고 있는 조씨는 2001년 이웃 두 명과 함께 이 모임을 만들어 울산 천곡동 대동아파트 앞에서 군고구마 팔기에 나섰다. 같은 아파트 소아암 환자에게 치료비를 마련해주기 위해서였다. 대학 때 군고구마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요긴했다. 장사 밑천은 당시 회원 3명이 각 12만원씩을 갹출한 돈. 모임을 만든 첫해에 군고구마 380만원 어치를 팔아 소아암 어린이에게 치료비로 전달했다. 이후 초창기 회원 중 1명은 모임을 떠났고 신입회원 2명이 새로 들어왔다.

 ‘군고구마 아저씨’들은 1년에 딱 열흘 간 고구마를 판다. 지난 17일부터 시작한 올해 장사는 오는 21일까지, 또 내년 1월 7∼11일 장사에 나선다. 판매 장소는 매년 바뀐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이웃이 사는 동네에서 장사를 하는 것이다. 동네 주민들 스스로 도와주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도움을 줄 이웃은 평소 회원들이 직접 발로 뛰며 찾는다. “오래 하다보니 우리한테 고구마를 사주는 게 이웃 돕는 일이라는 소문이 퍼져 고구마 한 개를 집어들고 100만원을 내고 간 사람도 있었어요. 동전이 든 저금통을 들고 오는 아이들도 여럿 있었고요.” 조씨의 설명이다.

 올해 목표 매출액은 1500만원. 전부를 구순구개열을 앓는 여중생 수술비로 전달할 계획이다. 조씨는 “이웃을 위한 사랑에 손을 함께 내미는 주민들이 고맙다”며 “ 군고구마 봉사를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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