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김형석 "표절은 수렁에 빠지는 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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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은 가슴으로 하고 편곡은 머리로 하죠. 자기 곡을 편곡하는 게 제일 힘듭니다. 다른 이들이 만든 곡을 편곡하면서는 늘 뭔가 배우게 되죠. "

199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계를 대표하는 작곡가를 꼽으라면 김형석을 빼놓을 수 없다. 1966년생. 피아노를 전공한 모친과 음악 교사였던 부친 사이에 태어났다. 한양대 음대를 85년 입학해 91년 졸업했다.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사랑하기 때문에' 의 고 유재하다.

"같은 과 4년 선배였습니다. 원래 제가 입학하던 해 형이 졸업했어야 했는데 학점 미달로 계속 다니고 있었어요.

제겐 행운이었고 운명이었죠. 지금도 제 음악적 목표와 기준은 재하형입니다. 언제나 형에게 부끄럽지 않은 음악 활동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

그는 대학 졸업과 함께 대중음악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스튜디오와 공연 현장을 찾아다니며 피아노 반주자로 일했다.

"참 힘들었지만 공부하는 자세로 일했지요. 클래식을 전공했지만 대중음악을 기초부터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양한 장르와 뮤지션을 경험한 것이 지금도 크게 도움이 됩니다. "

90년 고 김광석에게 '사랑이라는 이유로' '너에게' 등의 곡을 주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노래는 이듬해 김건모가 부른 '첫인상' . 각종 가요차트에서 두달 가까이 1위를 차지한 빅 히트곡이었다. 이어 그가 작곡하고 프로듀싱까지 한 리듬앤드블루스(R&B) 그룹 솔리드의 '이 밤의 끝을 잡고' 가 크게 히트하면서 확실한 인기 작곡가로 자리잡았다.

연이어 변집섭의 '그대 내게 다시' , 박진영의 '너의 뒤에서' , 엄정화의 '하늘만이 허락한 사랑' , 임창정의 '그때 또다시' 와 '러브 어페어' , 유승준의 '나나나' , 박정현의 '편지할께요' , 베이비 복스의 '겟 업' 등 수많은 히트곡들을 선보였다.

직접 만든 이들 곡 외에도 베이시스.김장훈.신승훈.보아 등 그가 편곡과 프로듀싱을 한 앨범까지 합치면 지난 10년 동안 한국 가요계는 발라드.댄스.R&B 할 것 없이 온통 그에게 신세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최근 인기를 모으고 있는 성시경의 '내게 오는 길' '처음처럼' 도 그의 작품이다.

김형석이 가요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수많은 히트곡을 내놓으면서도 단 한번도 표절 시비가 없기 때문이다.

"한번 표절하게 되면 창작에 자신감이 사라지고 계속 표절하게 됩니다. 수렁에 빠지는 겁니다. 그 유혹을 이겨내야 합니다. "

영화음악으로도 활동 범위를 넓힌 그는 최근 '엽기적인 그녀' 의 음악을 맡아 신승훈이 부른 주제곡 '아이 빌리브' 를 히트시키는 등 성공적으로 해냈다.

요즘은 신승훈의 새 앨범과 내년에 선보일 창작 뮤지컬 '구미호' , 창작 피아노 연주곡집 제작에 열중하고 있다. 그는 이미 '스타가 될거야' '겨울 나그네' 등의 뮤지컬을 히트시킨 바 있다.

김형석은 "곡을 만들고 노래도 하는 싱어송라이터들을 높게 평가한다. 음악적으로 고민하는 그들이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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