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되살아난 남북정상 대화록 논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천안함 사건 2주기를 맞아 지난 3월 서해상 일대에서 열린 초계함 전투태세훈련에서 NLL 국지도발에 대응해 초계함들이 해상 기동훈련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17일 국가정보원이 검찰에 제출한 2007년 남북 정상회담(노무현-김정일) 대화록 관련 자료가 대선 막판 변수로 불거졌다. 그동안 새누리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한다는 등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고 폭로했고, 민주통합당은 이를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하며 충돌해 왔다. 이날 검찰에 제출된 자료엔 그 진위를 가릴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 모두에게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도 있는 자료인 셈이다.

 국정원 자료는 A4용지 100여 쪽 분량으로, 봉인 상태로 제출됐다고 한다. 검찰은 아직 이를 개봉하지 않았으며 법률상 열람이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언제 할 것인지를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검찰 조사 시작부터 말이 달랐다. 민주당에 따르면 박지원 원내대표가 원세훈 국정원장과 통화했더니 원 원장은 “정상회담 대화록은 제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반면 새누리당은 “서상기 정보위원장(새누리당)이 원 원장과 두 차례나 통화해 확인한 내용”이라며 “국정원에서 대화록 원본을 들고 검찰에 가서 이를 발췌해 자료로 제출했다”고 반박했다. ‘검찰에 대화록이 갔으니 자료를 공개하자’는 게 새누리당, ‘공개할 자료가 검찰에 없다’는 게 민주당 입장인 셈이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동안 새누리당은 정상회담 당시 노 전 대통령 발언에 ‘상상하기 힘든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며 발언록 공개를 요구해 왔다. 정문헌 의원은 지난 14일 기자회견에서 “노 전 대통령은 군사기밀까지 거론하며 ‘작전계획 5029에서 미국 요구를 일정 부분 막아냈다’고 (김정일에게)말했다”고 주장했다. ‘작전계획 5029’는 북한 정권 붕괴와 탈북 사태에 대비한 한·미 군사계획이라 북한이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해 온 것이다. 정 의원은 또 “NLL을 남측이 더 이상 주장하지 않겠다” “남쪽에 내려가 국민을 설득하겠다” “북핵 문제 해결하려고 정상회담 하는 게 아니다” “북한 대변인 노릇 잘하겠다” 등을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서상기 정보위원장은 “대화록 자료가 제출된 만큼 민주당이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한 정 의원에 대해 검찰이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만 내려도 정 의원의 주장이 모두 진실이 된다”고 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도 이날 천안 유세에서 “국가관과 나라를 지키려는 의지가 있는지 확인하려면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남북정상회담 시 NLL 발언을 확인하면 된다”며 “지금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는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를 극구 반대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압박했다.

 민주당은 ‘북풍 공작’이라며 반발했다. 문재인 후보가 직접 나서 “선거 막바지에 또다시 못된 북풍을 일으켜 선거를 조작하고 민주주의를 위기에 몰려는 작태를 심판해 달라”고 호소했다. 정세균 상임고문도 “국정원이 선거일을 이틀 남기고 정상회담 관련 대화록을 검찰에 제출하고 새누리당은 지긋지긋한 색깔론을 다시 꺼내들고 있다”고 공격했다. 진성준 대변인은 “원세훈 원장이 민주당 인사들과의 통화에서 ‘대화록 자체가 공개되지는 않을 것이다. 국익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고 했다.

 대화록을 넘겨받은 검찰은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이금로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는 공개하기 어렵다”고만 밝혔다. 일단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국정원이 제출한 대화록 열람이 현행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저촉될 수도 있다고 보고 자료의 성격부터 파악하기로 했다.

 이 자료가 국가기록원(대통령기록관)이 지정기록물로 보관 중인 대화록과 같은 것이라면 대통령기록물관리법상 내용 확인이 어렵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하지만 공공기록물법에 따른 관공서(국가정보원) 보관용 공공기록물이라면 수사상 필요에 의해 열람할 수 있다. 검찰 관계자는 “대통령의 비밀 발언이라고 해서 모두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의 대상이 아니라 특별한 조치가 된 경우에만 해당한다”며 “국가기관이 증거물로 제출한 이상 검찰은 수사상 판단을 위해서라도 해당 자료를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열람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올 경우 검찰은 시점을 놓고 또다시 고민해야 할 입장이다.

 새누리당은 자료 공개 이전까지 노 전 대통령의 ‘부적절한 발언’ 폭로 시리즈를 유세 소재로 최대한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반면 민주당은 대선일 전에 대화록이 공개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고 여당의 전형적인 ‘북풍’으로 되받아치겠다는 입장이다.

문병주·허진 기자

[관계기사]

▶ NLL·국정원…네거티브에 빠진 대선
▶ 초박빙 선거 막판 네거티브, '카페트' 광속 확산
▶ 국정원 女직원 중간 발표 놓고 경찰·민주당 공방
▶ 문 "안철수·시민세력 등 참여" 국민연대 선언
▶ 박근혜, 수도권 돌며 '국정원 女직원 감금' 맹공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