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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건널목의 여간수|밀양역 가곡동 죽은 남편 대신한 이 여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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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기적소리가 목쉰 듯 멀리 메아리져 나갔지만 이 기적소리를 삶의「시그널」로 삼고 이곳에 등대처럼 서 지키고있는 한 여인.
밀양역 가곡동 철로 건널목 간수 이병화(37·가곡동 440) 여인의 나날의 생활은 이제 숙명처럼「레일」을 빼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이미 지난 비극은 이야기하지 말자. 이 여인에게는 다만 막중한 책임감과 시각시각 마다의 긴장이 있을 뿐이다.
지극히 사랑해주던 남편을 마의 철로에 빼앗기고 1년5개월- 그후 묵묵히 철로와 벗삼아 왔다. 그녀는 하늘도 얼어붙을 듯한 영하의 오늘밤도 건널목을 차단기로 막아놓고 이제 번개처럼 지나갈 철마를 맞이하려 하고 있다.
우리 나라 철도 건널목 간수 중에 홍일점인 이 여사는 하루 꼬박 40회를 오르내리는 경부선 열차와 이 건널목을 건너다니는 평균1백여대의 각종 자동차, 1천여명의 행인들의 귀한 생명을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이미 유명을 달리한 남편 이종팔(42)씨는 근속 18년의 모범철도 공무원-. 삼랑진 보안 분 소 공사 감독으로 있을 당시 63년1 10월17일 공무로 서울에 올라갔다가 돌아오던 중 충북 영동역구내에서 몇 명의 괴한에게 포위, 귀중한 서류가방을 날치기 당하기 직전 이 가방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대항하다가 실족 순직했다.
갑작스레 남편을 잃은 이 여인은 남편이 남기고 간 두칸 짜리 움막집과 5남매뿐이다. 이제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19년 전 남편 이씨와 결혼하던 당시의 보라빛 같은 달콤한 추억만이 이 여인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을 뿐이다. 이처럼 실의의 9개월을 지내고 보니 삶의 의욕도 먼 옛 이야기처럼 사라지려하던 64년 7월16일, 당시 철도청 신호과장과 철도국 공무과장의 주선으로 남편이 젊음을 송두리째 바친 철도국직원 간수직을 맡게됐다. 남편은 갔으되 남편과 더불어 살아가는 듯한 애틋한 감정마저 느끼며 여 간수의 고된 일을 맡았다. 처음 건널목에 섰을 때 칠흑 같 은 밤 공기를 뚫으며 기적소리가 귓전을 스칠 때 그녀에게는 하염없는 눈물만이 쏟아져 내렸다.
하루 꼬박 24시간의 근무. 여자로서는 너무나 벅찬 중노동이다. 월 봉급은 6천원. 어린 자녀들을 공부시키고 생활해 가기에는 너무나 적은 돈. 생활전선에서는 누구보다도 용감한 이 여인도 장녀 경희(15)양의 고등학교 진학 등록금에는 걱정이 태산같다고 한숨지었다. 【밀양주재=성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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