紙上談兵<지상담병>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01호 27면

중국 전국시대 조(趙)나라에 조괄(趙括)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그는 병서 읽기를 즐겼고, 나름대로 군사 작전을 짜기도 했다. 모의 전투가 열리면 그 누구도 조괄을 이길 수 없었다. 심지어 그의 아버지였던 조사(趙奢)조차 아들을 당하지 못했다. 부친 조사는 그러나 “내 아들이 장수가 된다면 나라를 망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아들이 전투를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왕족인 조괄은 장수가 됐고, 당시 최고 강국이었던 진(秦)나라와 운명을 건 전투의 사령관을 맡게 된다.

漢字, 세상을 말하다

실제 전투는 모의 전투와는 차원이 달랐다. 조괄은 진나라의 꾐에 넘어가 식량 보급선이 끊기는 위기에 직면했다. 병사들은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고, 결국 포위를 뚫지 못하고 항복하게 된다. 그렇게 조나라는 BC 222년 멸망했다. 조나라 병사 40만 명이 생매장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나오는 고사(故事)로, 여기서 나온 말이 바로 ‘지상담병(紙上談兵)’이다. 종이 위에서 군사작전을 짠다는 얘기다. 현실성이 없는 탁상공론(卓上空論)이라는 뜻이다.

중국의 새 지도자로 선출된 시진핑(習近平) 총서기는 최근 열린 당 간부 회의에서 “지상담병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실성 있는 정책을 짜라는 얘기다. 그는 ‘공담오국(空談誤國)’이라는 말도 꺼냈다. ‘빈말이 나라를 잘못된 길로 이끈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원래 ‘청담오국(淸談誤國)’에서 비롯됐다. 위진시대(221∼581년)의 지식인들은 명승지를 찾아다니며 청담(淸談) 나누기를 즐겼다. 후대 왕희지(王羲之·303~361)가 ‘빈말이나 일 삼고 일을 하지 않으며, 근거 없는 문장으로 중요한 것을 흐리는 무리’라고 비난했을 정도다. 청(淸)나라 시대 고증학을 열었던 고염무(顧炎武)는 “청담이 진(晋)나라를 망하게 했다(淸談誤國)”고 말했다. ‘지상담병’은 조나라를 망하게 했고, ‘청담오국’은 진나라를 멸망으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어디 그들뿐이랴. 현실을 무시한 탁상공론과 실현성 없는 빈말이 결국 나라를 망치는 것을 우리는 역사에서 보아왔다. 더 슬픈 것은 우리가 지금 현실성 없는 공약과 근거 없는 음해성 폭로로 얼룩진 대선을 지켜보고 있다는 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