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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저거 우리집 얘긴데"

중앙일보

입력

결혼이란 폭풍의 하늘에 걸린 무지개-.

바이런의 이 시구는 KBS2 TV '부부 클리닉-사랑과 전쟁' (금요일 밤 11시10분) 의 홈페이지 첫머리를 장식하는 글이다.

시인의 통찰대로 '큐피드의 화살' 과 '전쟁의 총성' 이 공존하는 게 부부 사이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불 속 이야기는 좀처럼 꺼내기 힘들기 때문에, 대개 혼자 문제를 끌어 안고 살아간다.

1999년 10월 방영을 시작, 오는 5일로 방송 1백회를 맞는 '부부…' 는 이런 고정관념을 깼다. 이혼 위기를 맞은 부부의 생생한 사연을 공론화해 기혼 부부나 예비 부부 모두에게 반면교사(反面敎師) 역할을 해 왔다.

프로가 끝날 때마다 각 가정이 심각한 토론장으로 변하는 신드롬을 낳았고, 심야 시간대임에도 20%가 넘는 시청률을 보였다.

이 프로의 장점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소재들로 꾸며지는 점이다.

과다한 혼수 요구로 시댁과 갈등을 빚는 며느리, 동창회에서 첫 사랑을 만나 바람을 피우는 남편, 학력 차이로 문제가 생긴 부부, 폭음과 도박으로 가정을 파탄낸 남편…. 또 잠자리 횟수와 관련된 부부 갈등, 동성애, 성 도착증 등 이제껏 다루기 꺼렸던 성(性) 문제도 정면으로 돌파했다.

그러나 이렇듯 남의 가정을 엿보는 아이템을 실제로 찾아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 아닐까. 장성환 총괄 PD는 "e-메일과 편지 등으로 익명의 사연을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혼소장을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며 "생각보다 제보가 많아 제작에 큰 어려움은 없다" 고 말한다.

그러나 소재가 민감한 만큼 사연 중 80%의 사실만 채택하고, 나머지 20%는 가상으로 꾸민다. 그럼에도 "왜 내 이야기를 방송하느냐" 며 항의하는 시청자들이 많다고 한다. 물론 그 중 거의 다가 극 중 내용과 사실관계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부부 클리닉' 의 가장 큰 특징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사연이 방영된 부부가 이혼을 해야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게 한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시청자 반응이 뜨겁다. 프로가 방영되고 나면 인터넷과 ARS를 통해 평균 2만건 정도의 접속이 이뤄진다고 한다. 병든 아내를 둔 중년 남자의 짧은 외도를 그린 '가을 남자' 는 5만2천여건의 반응이 쏟아졌다.

재미있는 것은, 시청자들의 의견이 대부분 이혼 쪽으로 기울어 결혼 생활에 대한 변화된 시각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굳이 3쌍 중 1쌍이 이혼한다는 통계청 자료를 들이댈 필요도 없다. 90년대초 비슷한 포맷의 '드라마 게임' 에선 대개 가정 유지 쪽으로 결론이 모아졌지만, 이젠 '무늬만 부부' 인 생활은 청산하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밖에서는 엘리트이면서 집에서는 아내를 심하게 구타하는 '매맞는 아내' 편에서는 무려 78%(2만8백여명) 가 이혼하라는 의견을 보내왔다.

'부부 클리닉' 의 인기는 다른 방송사에도 유사 프로들을 낳게 했다. 어찌보면 부부 사이의 내밀한 고민이야말로 그 어떤 극보다 드라마틱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비판이 없는 건 아니다. 부부간의 갈등을 다룬 극들이 되레 이혼을 조장한다고 일부에서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제작진의 입장은 명쾌하다.

다른 가정의 문제와 해결과정을 들여다보며 오히려 각 가정의 잠재 이혼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가정이 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 사회. 1백회를 돌파한 '부부 클리닉' 이 제작진의 말대로 가족해체를 막는 안전판 역할을 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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