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제로「동점」뺨치는 「크렘린」대 아 다변 외교|목표=중공세력 축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미국이 월남의 「정글」속에서 고전을 겪으면서 평화협상의 가능성을 앞에 놓고 중공 및 「하노이」정권과 입씨름을 벌이고 있는 동안 소련은 조용히 그러나 착실하게 다변적 외교 공세를 펴고 있다.
고질화 한인·「파」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서 「코시긴」 수상이 2일 「타슈켄트」에 도착하여 획기적 조정업적을 남기고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한 것을 필두로 7일에는 「셀레핀」이 고위 군사외교 전문가들을 이끌고 「하노이」에 도착했고, 또 5일 후에는 공산당 제1서기 「브레즈네프」가 국방상이 포함된 친선 사절단 을 이끌고 몽고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도착하는가 하면 민간 대표들은 「아바나」에서 열린 아·아·라틴·아메리카」 3대륙 회의에 참가하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외교 활동을 중·소 분쟁이라는 배경 속에 넣고 볼 때 뚜렷하게 부각되는 하나의 「패턴」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 「패턴」이라는 것은 이러한 외교활동이 한결같이 아주 국가들로부터 중공의 세력을 몰아 내던가 약화시키고 그 자리에 소련의 영향력을 심는다는데 그 표적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한 목표를 둔 외교활동을 소련이 최고위 지도자들을 동원해서 적극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은 곧 지금까지 설전에 그쳤던 중·소 분규가 이제는 국가정책으로 굳어질 만큼 불치의 선에까지 도달했음을 뜻하는 것이며, 이 반석으로 굳어진 단결도 결국 『동과 서는 결코 만날 수 없으리』라는 「키플링」의 시구를 예증 해줌을 뜻한다.
「셀레핀」은 「하노이」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월남해방 전선이 추구하고 있는 정당한 투쟁이 승리할 것을 확신하며 앞으로 가능한 모든 군사·경제원조를 제공하겠다』고 성명 하였다.
이와 같은 성명은 헐어빠진 무기를 그나마도 조금밖에 보내지 않고 있다고 비난하던 중공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며 수세기 동안 이 지역에 영향력을 뻗어왔으면서도 국내경제 사정 때문에 충분한 군사원조를 제공하지 못한 중공의 허점을 찌른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셀레핀」의 언질이 실현되면 그 영향력으로 월남전 해결에의 관건이 중공에서 소련으로 넘어가게 됨으로써 이러한 사태는 퍽 중요한 것이다. 월남전을 「민족해방운동」의 「모델·케이스」로 보고 있는 중공에 그와 같은 주도권의 상실은 치명적일 수 있는 것이다.
인·「파」문제를 보더라도 「파키스탄」을 은근히 밀어구어 인도를 불안상태에 몰아넣음으로써「네루」시대의 세력에로의 복고를 방해하겠다는 정책을 밀어오던 중공으로서는 「타슈켄트」회담을 탐탁케 생각지 않았다. 인민일보에서 이 사담을 처음부터 보도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그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소련의 중재로 양국이 뜻밖에도 화해함으로써 중공은 모처럼 얻은 맹방 「파키스탄」을 소련에 빼앗기게 되었고 그 방향으로 뻗던 세력은 중간에서 뚝 잘려 버렸다. 그러나 소련은 두 나라로부터 호감을 삼으로써 일석삼조의 득을 보게되었다.
몽고의 수도 「올란바토르」에 도착한 「브레즈네프」는 『상호우호와 협조를 위한 조약을 체결하기 의해』왔노라고 선언했지만 「말리노프스키」국방상이 포함된 「친선사절단」이 돼서 이 방문이 몽고 국방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인상을 짙게 하였는데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몽고의 인접국은 소련을 제외하면 중공뿐이므로 몽고의 방위문제란 중공을 적으로 가정할 때만 뜻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움직임은 새해와 더불어 활발해진 소련의 외교공세의 방향을 더욱 뚜렷이 해주고 있다. <성>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