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프리즘] 알듯 모를듯 개혁당의 행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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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노무현(盧武鉉)대통령당선자는 유시민(柳時敏)개혁국민정당 대표를 힘껏 포옹했다. 이어 환호하는 3백여 개혁당원들에게 진정 어린 감사말을 건넸다. "여러분은 단순한 당원이 아니라 전략적 사고를 하는 정예"라면서.

지난해 12월 19일 오후 11시가 조금 지났을 때의 한 장면이다. 당선 확정 직후 민주당에 나와 소감을 밝힌 盧당선자는 이내 당사를 나섰다.

그리고 곧바로 찾아간 곳이 이웃한 개혁당 당사였다. 盧당선자가 그 시점에 여기에 나타난 것은 의외로 비춰진다. 하지만 내막을 알면 이내 수긍이 간다.

*** 인터넷 정당 만들어 盧당선 기여

노풍이 꺼지고 지지율이 15% 아래로 처지던 지난해 7월 이후는 그에게 최악의 시기였다. 盧후보가 의지할 데라곤 노사모밖에 없었다. 당내에는 탈레반이라고 불리는 개혁파 의원 십수명이 고작. 이때 만들어진 게 개혁당이다.

"盧후보는 공조직으로 선거를 치를 결심을 했다. 법외 조직에 의존할 경우의 시비를 피하기 위해 당내 경선 때의 주력인 전국적 조직망을 해체했다. 그런데 盧후보가 공중에 떠버릴 상황이 됐다.

그래서 조직망을 재가동시키기로 했고 '국민후보 지키기'서명운동이 끝나던 8월 13일까지 핵심 라인을 복구했다. 3천여명이 재집결했다. 그러나 이로는 부족했다. 후보 등록 직전 민주당 중도파까지 정몽준 쪽으로 빠져나갈 경우를 대비한 갈아 탈 말(당)이 있어야 했다.

23일 40여명이 모여 인터넷 정당 결성을 결의했고 선거일 즈음엔 3만6천여 당원을 규합했다. 노사모와 겹치는 당원은 30%(1만명) 정도다." 개혁당 창당을 주도한 柳대표의 말이다.

노사모 회원 7만여명을 포함, 10만명 가까운 인원이 특공작전을 전개한 셈이다. 돼지저금통을 뿌리고 희망티켓을 팔고, 비판자를 공격하고…. 제 돈 들여 뛰어다닌 이들의 투지.열정은 상상이 간다.

수당 받는 운동원 1백만명 이상의 위력을 발휘했을 터다. 게다가 공조직이 아니라서 웬만한 불.탈법 행위는 언론과 공권력의 감시망에서 벗어나 있었다.

"아마 盧당선자가 선거자금을 제일 많이 썼을 거다. 그를 위해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쓴 비용을 합치면-. 선거 전날 밤 정몽준의 지지철회 선언이 있자 중앙당은 독전 '번개'를 때렸고, 전원이 전화.인터넷으로 여기저기 눈물의 호소를 했다.

지지 철회를 보도한 조간신문을 '수거'하느라 밤을 지새웠고…." 盧당선자가 어떻게 있게 됐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회고담이다.

1986년 운동권 변론을 맡은 정법회(민변 전신) 토론회에서 '盧변(호사)'을 처음 만난 柳대표는 인간적 매력 때문에 그를 따르게 됐다고 했다.

특히 盧변의 의원직 사퇴 후 마포 비밀 아지트에서 세상사를 얘기할 때가 기억난다고 했다.

盧변은 점심 식사 후 서너 시간씩 토의를 이어갔으며 궁금증이 풀려야만 자리를 떴다고 한다.

*** 합당 거부하며 인수위 개별참여

盧당선자와 이런 특수관계에 있는 柳대표가 오는 4월 보선에 출마해 민주당과 한판 붙을 작정이다. 민주당이 백지 신당으로 환골탈태하지 않는 한 합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에도 (개별적으로)참여한 개혁당의 정체는 야릇하다. 盧당선자를 지금도 '노짱'이라고 부르며 따르는 무리, 이들 존재는 여권의 정계개편 시도와 관련해 정말 주목할 대상이다.

김현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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