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에서 아이들과 웃고 떠들 듯

중앙일보

입력

원종배씨에게 미안한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그의 이름을 떠올리면 거의 동시에 ‘사랑방 중계’라는 프로그램이 머리 속에서 고스란히 재생된다.

5년째 EBS ‘장학퀴즈’를 진행하고 있으며 지금은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지금이야 흔한 레퍼토리가 됐지만 ‘사랑방 중계’에서 처음 시도한 평범한 사람들의 거리 인터뷰는 충격적이었다.

거기다 오리 전택부 선생, 영화평론가 정영일씨, 변호사 황산성씨의 구수한 입담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화려하지 않지만 진솔했던, 평범한 듯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던 프로그램 ‘사랑방 중계’는 원종배씨의 이미지와 너무나 닮았다.

아이들의 말하기 교육에 관한 책을 펴냈다는 사실 역시 너무나 원종배씨와 어울린다. 느릿느릿, 하지만 명쾌하게 프로그램을 이끌던 그의 말솜씨를 생각하면 어떤 식의 말하기 교육일까, 쉽게 짐작이 간다. 원종배씨가 최근 펴낸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는 아이로 키워라』(아이북)는 그의 구수한 생각과 함께 아이들을 위한 ‘새로운 제안’으로 가득하다.

아이들과 말하자, 놀면서 말하자
“말하기 교육이라곤 하지만 이번에 낸 책은 뭔가 가르치는 책이 아니에요. 부모가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함께 하라는 거죠. 아이들의 언어는 부모의 흉내내기에서 시작하거든요. 가르친다는 개념으로 시작하면 아이들은 싫어해요.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노는 거죠. 함께 놀면서 어른들은 말을 고칠 수 있지만 아이들은 사고력이나 인성까지 배울 수 있어요. 훨씬 습득 효과가 크죠.”

그래서인지 책 속에는 함께 노는 방법이 자세하게 적혀 있다. 뉴스 앵커 되기, 기상캐스터 되기, 몸짓 알아맞히기, 1분 스피치, 인터뷰하기 등 말하면서 놀 수 있는 거의 모든 방법이 나와 있다. 이런 놀이 방법은 단순히 그의 머리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직접 딸 열매와 놀면서 깨친 원종배씨만의 노하우가 담긴 것이다. 원종배씨가 가장 추천하는 놀이는 바로 1분 스피치다.

“아나운서 신입 연수시절에 모두들 가장 괴로워하는 게 공포의 3분 스피치예요. 그걸 응용한 거죠. 더 쉽고 재미있게 말하기 놀이를 하는 거예요. 실제로 주위에 얘기해서 효과를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아이들만 시키면 절대 안 하죠. ‘열매야, 저기 앞에 나가서 너 한번 소개해봐’이러면 절대 안 해요. ‘우리 1분 스피치 놀이할까? 주제는 뭘로 하지? 그럼 가위바위보로 누가 먼저 할지 정해볼까?’아빠가 먼저 시범도 보이고 이렇게 놀이 같아야 즐겁게 할 수 있어요.”

책 속에는 ‘가족 스피치 대회 평가표’도 포함돼 있다. 목표를 정하고 형식을 갖춰야 재미있어 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낸 것이다. 원종배씨가 말하기 놀이를 생각해 낸 데는 딸 열매의 공이 컸지만 경희대학교 어린이 스피치에서 강의한 경험과 학부모에게 강의한 내용도 많은 도움이 됐다. 학부모들이 문의를 해오면 함께 상의하고 고민하면서 풀어나간 문제들이었다.

뜬구름만 잡지말고 구체적으로
원종배씨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말하기 교육은 바로 가정에서의 대화다. 수많은 언어폭력에 아이들이 노출돼 있지만 부모와 아이가 많은 대화를 나눈다면 올바른 말하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눈다고 해서 모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인다. ‘요즘 어떠니?’이런 식의 뜬구름잡는 얘기가 아니라 구체적인 대화만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부모들이 잘못 하는 부분이 두 가지 있는데 아이들을 무시하는 것하고 적당히 넘어가려는 거예요. 아이들이 얼마나 호기심이 많고 궁금한 게 많아요. 나는 가능하면 우리 열매한테 다 설명해 주려고 노력합니다. 그거 무지하게 머리 아파요. 머리에 쥐나요. 그래도 가능하면 다 해주려고 하죠. 부모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많은 예를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는 거죠. 열매한테 뭔가를 강요해본 적은 없어요. 열매한테 의견을 묻고 열매 스스로 거기에 대한 답을 할 수 있도록 하죠. 물론 내가 살살 꼬시는 기술이 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쪽으로 열매를 많이 유도하긴 하지만 말예요. 열매도 그냥 평범한 애예요. 그런데 열매가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남의 말을 받아들일 줄 아는 훈련이 돼 있다는 거죠. 부모가 자극을 줘야 해요. 아무리 답이 뻔하다고 하더라도 아이가 판단하도록 해야죠.”

원종배씨의 책은 유창하게 말하기를 가르치는 책이 아니다. 말하기를 가르치는 책이라기보다 듣기를 가르치는 책일 수도 있다. 상대방의 말을 열심히 듣는 것이야말로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인 것이다. 책 속에 수록한 ‘말하기 놀이’나 ‘자신을 잘 표현할 줄 아는 아이로 키우는 원칙 10가지’도 모두 그런 생각에 근거한 것이다.

그래서 원종배씨의 책은 자기의 생각을 강요할 줄만 할지 상대방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지 않는 요즘 우리들에게 많은 울림을 준다. 너무 거창한 얘기로 번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제대로 대화하는 법을 좀더 일찍 가르쳤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살기 좋은 곳이 되지 않았을까? 그러니 아이들에게 먼저 가르쳐야 할 것은 지식이 아니라 듣는 법이 아닐까? (김중혁/ 리브로)


■ 바른 말 고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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