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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이슈] 회사서 육아방…근무시간도 자유롭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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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직장을 다니는 여성들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는 바로 육아(育兒)문제다. 여성 직장인들은 일을 하면서도 자녀가 잘 지내는지 항상 마음에 걸린다.

직장인들의 육아 전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아직 부모에게 기대거나 육아방.보모 등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지만 직장인들의 고민은 그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회사 내에 육아방을 만들어주거나 플렉서블 타임 제도를 도입하는 등 회사 측이 직원들의 육아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방문판매 화장품사인 메리케이 조윤숙(31)과장이 아들(5)을 남들보다 쉽게 키우게 된 것은 회사의 '플렉서블 타임(Flexible Time)'제도 덕분이다. 플렉서블 타임이란 원하는 시간에 출근해 정해진 근무시간만큼 일하는 방식이다.

조과장은 오전 10시에 출근해 오후 7시에 퇴근한다. 덕분에 올해부터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을 유치원까지 데려다 주고 출근할 수 있다.

조과장은 "플랙서블 타임제 덕분에 바쁜 아침이 다소 여유롭게 됐다"며 "직원의 80%가 여성이라서 회사가 많은 배려를 해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정보통신연구소 황혜련(34)책임연구원은 여섯살배기 딸과 네살배기 아들의 육아문제 때문에 직장생활 내내 골머리를 앓았다. 그러다 지난해 3월 사업장이 분당에서 수원으로 옮기자 황연구원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바로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엔 회사가 운영하는 육아방이 있었기 때문이다. 용인 수지집에서 출퇴근 시간은 좀더 들지만 두 아이와 함께 움직일 수 있었다. 황씨는 "아이들이 가까이 있어 직장생활에 안정감이 더해졌다"며 만족해했다.

메타브랜딩 네이밍팀 변성숙(30)실장은 지난해 10월 딸을 출산했다. 3개월의 출산휴가를 쓴 변실장은 1월부터 회사에 복귀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몸을 추스르자마자 바로 육아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했다. 며칠 동안 고민하면서 회사 복귀를 머뭇거렸다. 이런 고민을 알아차린 회사 측은 변실장에게 재택근무를 허락했다.

변실장은 "나는 아주 운이 좋은 케이스"라며 "한국의 현실은 아이를 가진 직장 여성들에게는 냉혹한 것 같다"고 했다.

다섯살배기 아들을 두고 있는 한미은행 김우진(32)씨는 육아에 관한 회사 규정이 고맙기만 하다. 출산휴가 90일과 출산휴직을 합해 총 1년간 쉴 수 있는 규정에 따라 1년을 쉬며 육아에 몰두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구립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낼 수도 있었다. 김씨는 "최근 은행이 주 5일 근무로 전환하면서 주말 육아도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이처럼 직원들의 육아문제에 관심을 갖는 회사가 늘어나고 있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여전히 부모나 육아방.보모 등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애로 사항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부모님 집을 아예 자신의 집 근처로 옮기거나 회사 근처로 이사가는 경우도 흔하다.

고진모터임포트 비서실 신경미(28)씨는 멀리 살던 친정 부모님을 집근처로 모셔 육아를 맡긴 케이스. 신씨의 어머니는 문정동에 살다가 최근 신씨의 상도동 집 바로 옆집으로 이사했다. 다시 직장에 복귀하면서 동네의 육아방을 돌아다녔지만 아이를 맡길 만한 곳이 없다는 신씨의 하소연을 뿌리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씨는 "어머니에게 너무 죄송하지만 아이를 맡길 수밖에 없다"며 "친구들을 보면 육아 걱정에 회사를 그만두거나 아예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안철수연구소 인사팀 김명은(28)씨는 큰딸(4)만 있을 때는 인근에 살던 친정어머니에게 아이를 부탁하고 인천에서 서울로 출퇴근했다. 그러나 아들(2)을 하나 더 낳은 뒤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어머니가 아이 둘은 봐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회사가 있는 서울 수서동으로 이사했다. 회사와 육아방이 모두 10분 거리에 있는 위치에 집을 택했다.

그 뒤 오전 7시부터 아이들 아침을 준비하고, 오전 8시에는 아이들을 육아방에 데려다 준 뒤 회사에 출근한다.

김씨는 "회사에 조금이라도 일찍 나가려고 하지만 아이들 때문에 힘들다"며 "회사 동료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강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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