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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빵집 전쟁의 동상이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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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최지영
경제부문 기자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면이 크다. 국내 빵집 시장 얘기다. 상황이 제빵 본가인 유럽은 물론 이웃 일본과도 사뭇 다르다. 유럽·일본 모두 동네 빵집 대부분은 셰프나 파티시에가 직접 빵과 케이크를 구워 운영하는 개인 가게다. 일본은 전체 제빵산업 1조8000억 엔 규모 중 대기업이 내는 매출이 75%지만 이들은 모두 수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서 파는 ‘완제품 빵’에 집중하고 있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프랜차이즈 빵집 ‘안데르센’의 경우 1967년 히로시마의 작은 빵집에서 시작해 커졌지만 가게 수는 71개로 국내에서 가장 가맹점이 많은 파리바게뜨의 3160개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이다.

 국내 사정은 어떤가. 파리바게뜨·뚜레쥬르는 그간 공격적인 확장을 하면서 논란을 자초했다. 제과협회는 “건물주에게 임대료를 더 주겠다고 해 동네 빵집을 내모는 경우도 많았다”고 주장한다. 2000년 1500여 개였던 프랜차이즈 빵집은 최근 5200여 개로 늘었고, 그사이 동네 빵집은 1만8000여 개에서 4000여 개로 줄었다.

 결국 동네 빵집 문제는 정치쟁점화됐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중재해 파리바게뜨·뚜레쥬르·제과협회 3대 주체가 상생 방안을 논의해 왔다. 규제가 발등의 불로 떨어지자 상생 방안 논의에 나선 대형마트 업계와 비슷한 모습이다. 하지만 그간의 논의 과정을 보면 참여 주체들은 동상이몽인 듯 보인다. 파리바게뜨는 대기업 CJ계열인 뚜레쥬르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면서 “우린 대기업이 아닌 제빵 전문기업”이라고 주장한다. 뚜레쥬르는 확장 자제를 선언하며 동네 빵집을 달래보자는 전략을 편다. 제과협회는 한때 개인 빵집 발전기금 50여억원을 요구해 논란이 됐다.

 프랜차이즈 빵집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빵집들을 보면 생존책은 분명하다. 한남동 ‘오월의 종’은 올리브·무화과·로즈마리 같은 천연 재료를 사용하고, 일부 빵은 발효 시간만 일주일을 두는 등 공을 들인다. 신사동 뺑드빱빠는 전남 구례에서 직접 밀밭을 가꾸고, 신안 천일염을 쓴다.

 관건은 이처럼 동네 빵집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스템이다. 거대 프랜차이즈 기업들에 맞서 재료를 저렴하게 살 수 있게 공동구매 지원, 나만의 빵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해외 제빵 기술을 가르쳐주는 교육 같은 것이다. 동네 빵집 상생 방안은 어떻게 이런 시스템을 동네 빵집들에 지원할지 고민하는 데서 나온다. 동네 빵집도 바뀌어야 한다. 지난 6월 한국을 찾은 일본의 제과 명인 기무라 시게카쓰는 “제과·제빵을 하는 사람들은 넘버 원이 아니라 온리 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저것 다 갖추기보단 다른 빵집에는 없는 자랑할 소품목 특화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살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