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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에게도 PB가 필요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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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김석구
하나대투증권 WM본부장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젊었을 적엔 친구를 만나기만 하면 “주식 좀 찍어달라”고 했다. 지금은 아니다. 다들 “노후 준비는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다.

 그럴 것이 요즘 주식시장을 보면 답답하다. 3차 양적완화(QE3)처럼 각국 정부가 시장에 돈을 풀고 있지만 경기는 좀처럼 회복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증시의 위·아래가 모두 막혀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예금에 의지해 노후를 준비하자니 갑갑하다. 1년 정기예금 금리가 3% 초반에 그친다. 세금과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질금리는 마이너스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진입한 걸 고려하면 과거 경험했던 고금리 시대가 다시 올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좀 더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재무 설계가 필요하다. 아직 한국에서는 프라이빗뱅커(Private Banker)나 재무설계사(Financial Planner)에게 금융자문을 받는다는 개념 자체가 생소하다. ‘그런 건 나와는 상관없는 부자들 얘기일 뿐’이라고 치부한다. 그러나 미국 등 금융 선진국에서는 아니다. 재무설계는 평범한 직장인을 포함해 누구에게나 필요하 다. 향후 저금리·고령화 사회에서는 병을 고치는 의사처럼 금융주치의가 꼭 필요하게 될 것이다.

 재무설계를 할 때는 무엇을 먼저 고려해야 할까. 먼저, 원하는 수익률(요구 수익률)이 얼마인지를 따져야 한다. 주의할 점은 요구수익률이 ‘희망’ 수익률은 아니라는 점이다. 요구수익률은 보통 연간 지출액과 상대적으로 장기적인 저축 목표액에 따라 실현 가능성을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

 다음으로, 각자가 감내할 수 있는 위험(리스크)의 정도다. 이때 위험감수 ‘능력’과 ‘의지’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위험감수능력은 자산의 크기, 급여 수준, 가족의 재정능력, 직업 등에 따라 결정된다. 반면 위험감수의지는 투자자의 주관적인 의지나 경험 등에 의해 결정된다. 가령 자산이 많아 위험감수능력은 높으나 위험 선호도가 낮아서 위험감수의지는 낮을 수 있다. 반대로 자산규모나 직업으로 보면 위험감수능력은 낮지만 위험선호도가 높아 위험감수의지는 높을 수 있다. 두 가지가 충돌할 경우에는 보수적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리고 투자 기한도 고려해야 한다. 투자목표는 투자기한에 따라 다르게 정해야 한다. 재무설계에 있어 투자기한이 2~3년이라면 단기, 10년 이상이라면 장기다. 투자기한이 2년 미만이라면 자산 불리기보다는 지키기에 중점을 둬야 한다. 이때 유동성도 따져야 한다. 그외 금융소득종합과세 등 세금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재무설계는 왜 필요한가. 높은 수익률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다. 재무설계는 인생의 핵심적이고 장기적인 투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은퇴 후 노후 생활이나 공익 기부, 혹은 10년 후 사업자금 마련 등과 같은 재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재무설계가 필요하다.

 저금리·고령화 시대다. 재무설계가 빨리 보편화돼야 한다. 금융감독당국과 금융회사부터 우리 사회에 재무설계를 어떻게 뿌리내리게 할지 고민해야 하겠다.

김 석 구 하나대투증권 WM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