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향기·사회성 갖춘 평전] '나는 내가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인종과 국적을 뛰어넘어 인간해방이라는 대의 아래 든든한 동지였던 사르트르와 그의 부인 보부아르는 프란츠 파농(사진) 을 이렇게 말했다.

"명석한 지성과 생명력이 넘치는 열정, 그리고 탁월한 유머감각을 겸비한 그는 온갖 사물을 설명하고 흉내도 잘내는 타고난 이야기꾼 같았다. " (2백84쪽) 백혈병 합병증으로 죽어가기 직전 처음으로 파농과 만난 뒤 프랑스의 지성이 이 식민지 전사에게 얼마나 깊은 인상을 받았나가 드러나는 회상이다.

그런 일상 속의 이미지와 달리 '제국주의' 라는 20세기의 야만에 가장 첨예하게 대항했던 삶을 살았던 식민지 지성 파농(1925~1964) . 채 40년을 채우지 못한 그의 행동반경을 매우 평이한 방식으로 서술하는 데 일단 성공한 책이 『나는 내가 아니다』이다.

파농처럼 정신과 의사 출신인 저자 엘렌(유진랭 칼리지 교수) 은 아무래도 제1세계 사람이기 때문에 파농의 평전을 이토록 점잖게만 서술했을 것이다.

원제 'Frantz Fanon-A Spiritual Biography' 를 시인 김수영의 시구를 따와 『나는 내가 아니다』고 한 것은 편집자의 감각일 것이다. 어쨌든 분량도 많지 않고 해서 파농의 입문서로 적절한 책이 이번 번역이다.

반(反) 식민주의자, 사해(四海) 동포주의자라는 평가에서 악마이자 사이비 교주라는 극단의 악평까지 듣는 파농의 어린 시절에서 지적 성장과정과 투쟁의 삶, 그리고 알제리의 국장(國葬) 으로 생을 마감한 과정이 한눈에 들어온다.

블랙파워가 한물가고 파농은 많이 잊혀졌다. 그러나 체 게바라 이상 가는 활동과 현실인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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