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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 한 홍합,팔뚝만 한 홍해삼,따개비밥,오징어내장탕,꽁치물회,해계탕 ... 딴 세상 맛!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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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호 11면

(위)울릉도 도동항에 눈 내린 모습.(아래 왼쪽부터)새우깡에 익숙한 ‘미식 갈매기’들.스쿠버다이빙으로 직접 해산물을 마련하는 ‘신비섬’의 신상곤 대표. 울릉도 산닭에 전복, 뿔소라,홍합 등이 올라간 ‘전복 해계탕’.

울릉도 여행은 한국인에게 로망이다. 가는 길이 멀고 험난해 어쩌면 이웃 나라 일본이나 홍콩을 가는 게 더 쉬울 수도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독도를 가기 위한 경유지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울릉도는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미지의 섬이다. 울릉도의 사계(四季)는 육지의 그것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상당히 다르다. 여름철, 한 달 이상 비가 오고 습도가 높은 육지의 장마와는 달리 울릉도는 미국 서부의 날씨처럼 비가 거의 안 오는 선선한 날씨의 건장마다. 겨울은 한반도에서도 눈이 가장 많이 오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온난한 날씨라 눈도 금방 녹는 편이다. 한마디로 이국적이다. 또 깊은 수심과 수온 때문에 어류가 다양하지는 않으나 뛰어난 청정 환경 덕분에 거의 모든 해산물이 자연산이다. 계절에 관계없이 1년 내내 어른 손바닥보다 큰 홍합, 뿔소라, 전복,석화(굴)를 맛볼 수 있으며 겨울에는 오징어·한치·문어·홍해삼·방어·노래미·쥐취 등이, 여름에는 성게·새우·도미·돌돔·능성어·뱅어돔 등이 제철 해산물이다. 여기에 약초를 먹은 소와 산닭까지 있으니 식도락가들에겐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의 파라다이스다. 예고 없는 풍랑주의보로 배편이 언제 끊길지 모른다는 스릴감만 감수할 수 있다면 설경이 장관인 울릉도 겨울 여행은 미식의 기쁨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흔치 않은 체험이 될 것이다.
필자는 최근 2년 사이 울릉도를 일곱 차례 다녀왔다. 최근에는 11월 9일과 10일 이틀간 짧지만 알찬 나들이를 했다. 오가는 길이 모두 쉽지 않았지만 신선하고 맛있는 음식과 때묻지 않은 자연 풍광, 그리고 넉넉한 인심은 어느새 다음 여행을 기약하게 만들곤 했다. 어두컴컴한 새벽 서울을 출발해 포항항(3월부터 11월까지는 강릉,묵호항에서도 배가 뜬다)에 도착해 배를 타고 한숨 푹 자고 나면 창 밖으로 기이한 절벽 해안이 보인다. 동해 한복판, 울릉도다.

겨울에 떠나는 울릉도 미식 투어

점심엔 홍합밥, 저녁엔 약초 먹고 자란 약소 곱창전골
비행기 또는 배로 여행을 하거나 오랜 시간 운전을 한 직후에는 어디서건 칼칼한 음식을 찾게 된다. 뭐 얼큰한 게 없을까. 도동항에 내려 ‘바다회센타’로 들어갔다. 입구의 수족관에는 겨울이 제철인 방어, 전복을 주로 먹고 다닌다는 매섭게 보이는 커다란 자연산 돌돔이 힘차게 헤엄치고 있었다. 일단 오징어물회 그리고 꽁치물회를 주문했다. 오징어물회야 동해안 쪽에서는 흔히 접할 수 있는 요리지만 꽁치물회는 울릉도에서 처음 먹어본다. 꽁치의 비린 맛은 전혀 없었고 도리어 깔끔하고 담백했다. 따개비밥도 주문했다. 따개비는 타 지역에서는 오염돼 먹지 못하지만 청정지역인 울릉도에서는 가능하다. 쫄깃쫄깃 씹히는 따개비의 식감이 전복과는 또 달랐다. 요즘처럼 쌀쌀한 날씨라면 따개비 칼국수도 생각난다. 따개비 칼국수는 ‘신애분식’을 추천한다. 닭과 멸치로 육수를 만들고 따개비를 넣은 이 진하고 담백한 칼국수의 맛은 한마디로 예술이다.

(위)도동에서 해풍에 오징어를 말리는 모습.(가운데 왼쪽 부터)녹진하고 구수한 국물 맛이 일품인‘신애분식’의 따개비 칼국수. 칼칼하고 시원한 맛의 ‘바다회센타’의 오징어내장탕.장시간 배를 타고 내리면 반드시 먹어야 할 울릉도의 향토요리다.‘보배식당’의 홍합밥.(아래 왼쪽 부터)전혀 비린 맛이 없는 ‘바다회센타’의 꽁치물회. 고추장 소스를 뿌렸다.‘용궁’의 어른 손바닥보다도 큰울릉도 자연산 홍합탕.‘바다회센타’의 따개비밥.

이제 얼큰한 국물이 나올 시점. 어느새 오징어내장탕이 보글거리고 있다. 찬바람이 나는 겨울철 오징어야말로 울릉도를 대표하는 제철 음식. 살아 있는 오징어의 내장으로만 끓여내는 이 요리는 담백하고 해장으로도 그만이다. 지리와 매운탕 두 종류가 있어 입맛대로 주문할 수 있다. 오징어 내장은 대구 이리와 단단한 곤이와 흡사한데 퍼석하지도, 쫄깃하지도 않은 식감이 칼칼한 국물과 깊은 조화를 이룬다.
울릉도의 대표적인 별미가 자연산 홍합밥이다. 밥을 지을 때 홍합을 넣고 같이 짓는다. 울릉도에서는 어느 식당에서든 쉽게 먹을 수 있는데 맛이 각각이고 개인적으로는 보배식당을 꼽는다. 도동항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조용한 골목에 있는 아담한 식당이다. 한때는 홍합 샤브샤브, 홍합죽도 만들었다는데 지금은 홍합밥 하나만 내온다. 고슬고슬 찰진 밥 사이에 있는 선명한 오렌지색의 홍합이 먹음직스럽다. 홍합을 양념장에 찍어 한입 베물면 깊은 바다 맛이 느껴진다.

(위)울릉도에서 출렁다리로 연결된 관음도. (아래 왼쪽부터)울릉도 갯바위에 자생하는 따개비.도동항에서 본 희한한 모양새의 울릉도 쥐치.전국에서 질 좋기로 유명한 울릉도 홍해삼의 제철은 바로 겨울이다.

울릉도 곳곳을 구경하느라 출출해졌다면 저녁식사는 울릉도의 또 다른 명물 약소로 한다. 산에서 자생하는 약초와 맑은 물을 먹고 자랐다고 해서 약소다. 명품 한우라 그런지 가격 또한 만만치 않다. 육지 고기가 기름지다면 약소 고기는 기름기가 없는 담백한 맛이다. 씹으면 씹을수록 감칠맛이 느껴진다. 몇 번 맛을 본다면 다른 쇠고기는 생각나지도 않을 정도다. 도동에 있는 ‘향우촌’의 경우 직접 운영하는 농장에서 키운 약소만을 내놓는다. 특히 약소 머리 곰탕이라든지 육회·불고기, 그리고 약소의 곱창이 가득한 곱창전골은 향우촌의 시그니처 요리다. 그 귀한 약소의 곱창이라니 호사스럽기도 하거니와 미식가들의 식욕을 자극하기에도 충분하다. 여기에 명이나물이라든지 산채, 직접 재배한 유기농 야채와 함께 곁들여 나오니 웰빙용 건강 밥상이 따로 없다.

‘산마을식당’의 더덕전(위).‘용궁’의 최대식 사장이 직접 캐온 청정 지역에서만 나온다는 ‘거북손’.(아래)

140m 출렁다리 건너면 관음도…무인도 원시림 산책을
울릉도의 아침은 항상 산책으로 시작한다. 도동항의 작은 어시장은 산책 코스로 제격이다. 자연산밖에 없다는 울릉도의 해산물은 어떻게 보면 그리 다양하지는 않지만 매일 어부들이 잡아올린 살아 있는 힘찬 제철 생선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기암절벽의 거친 풍경이 연달아 펼쳐지는 해안도로를 따라 한 시간 정도 달리다 보면 고즈넉한 천부항이 나온다. 도동항에 비해 한적하고 외딴 시골 항구마을이다. 이 천부 마을에서 동쪽으로 15분 정도 더 차를 몰고 가면 죽도가 보인다. 이어 독도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울릉도의 부속 섬 관음도의 수려한 절경을 만날 수 있다. 고기잡이를 하던 어부들이 풍랑을 만날 때 피신했던 섬으로 인적이 끊긴 지 오래된 무인도다. 이 관음도와 울릉도를 연결하는 140m의 출렁다리가 올여름 완공됐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신비한 아로마 향기가 코를 자극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보니 분명 섬 안에서 나오는 향기인 것 같은데 그 출처를 찾지 못하다가 원시림을 그대로 간직한 섬 안을 산책하면서 발견했다. 한 이름 모를 나무에 피어 있는 아주 작은 하얀 꽃들에서 풍겨나오고 있었다.
희귀 식물들의 생태계를 고스란히 보존한 원시림인 관음도의 매력은 이런 기분 좋은 아로마와 잔잔한 바닷바람을 맡으면서 30분 정도 트레킹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간혹 바로 앞에서 놀라 날아가는 꿩을 마주치는 것 외에는 자연이 내린 대자연의 기운을 아무런 방해 없이 누릴 수 있다.

갓 잡은 전복·뿔소라·문어·석화와 산닭의 조화, 해계탕
송곳산과 코끼리 바위가 있는 천부항을 지나 한 시간 남짓 올라가면 나리분지가 나온다. 성인봉 북쪽 칼데라화구가 함몰해 형성된 울릉도 유일의 평지다. 이곳에 ‘산마을 식당’이 있다. 나리분지는 겨울철에 눈이 많이 오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통나무 산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이곳은 겨울에도 영업을 한다. 산채비빔밥으로 유명한데, 나는 더덕전을 특히 좋아한다. 큼지막한 울릉도 산더덕을 큼직큼직 썰어 울릉도의 또 다른 야생초인 참고비와 부지깽이나물 등을 넣은 더덕전은 ‘신토불이’가 따로 없다. 곁들여 나오는 산더덕장아찌와 산삼처럼 사포닌 성분이 있다는 쇠고기 맛의 ‘눈개승마’라고도 불리는 귀한 삼나물. 향기 좋은 더덕전이나 산채전을 씨껍데기 동동주나 마가목 나무의 열매로 만든 마가목주와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나리분지에서 돌아오는 길에 사동의 ‘신비섬’을 들렀다. 미리 주문한 해계탕을 맛보기 위해서다. 해계탕은 울릉도의 산닭 백숙 위에 자연산 전복·뿔소라·홍합·석화·조개·문어 등을 호쾌하게 쌓아 올린 요리다. 이 집 주인 신상곤씨는 보통 2시간 전 주문을 받으면 바다로 나가 해산물을 잡아올린다. 해계탕을 다 먹고 나면 이 집만의 독특한 물회가 나온다. 뿔소라와 전복, 오징어에 약간의 국수가 더해진 물회는 겨울철 별미다.도동항 오른쪽에서 시작해 행남등대를 거처 저동의 촛대바위까지 2시간 정도 걸리는 해안 산책로는 울릉도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보여주는 코스다. 파도와 바람이 만들어낸 구불구불 비탈길부터 함성을 자아낼 만한 기암동굴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걷는 곳이다. 이 산책로 어디쯤에 ‘용궁’이 있다. 식당은 아니고 포장마차 스타일의 주점이다. 어른 팔뚝보다 큰 싱싱한 홍해삼은 눈을 휘둥그레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운 좋은 날이면 최대식 사장이 직접 스쿠버다이빙을 해 창살로 잡아 바닷속에서 순간적으로 피가 빠진 돌돔이나 능성어, 노래미의 쫄깃한 육질도 맛볼 수 있다.
어느새 캄캄해진 울릉도의 수평선을 오징어 배들이 환하게 밝히고 있다. 그 유화 같은 바다를 보면서 마시는 술은 신기하게도 절대 취하지 않는다. 아마도 육지와는 또 다른 ‘음이온’ 때문일까?


울릉도 여행 정보
▶배편
겨울철이나 늦여름 태풍 시즌의 기상악화에는 결항될 수 있다. 강릉, 묵호는 11월 중순부터 2월까지는 운행하지 않는다.
씨스포빌 1588-8665 대아 고속해운 1544-5117
강릉~울릉도(저동항) 4만9000원(편도)
묵호~울릉도(도동항) 5만500~5만5500원
포항(연중)~울릉도(도동항) 5만8800원

▶주요 숙소
대아 리조트&호텔 http://www.daearesort.com
경북 울릉군 울릉읍 사동리: 302-1, 054-791-8800
울릉호텔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도동 262, 054-791-6611
신비섬 펜션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 146-5, 054-791-4460
휴 행복한 펜션 경북 울릉군 북면 나리 470-1, 054-791-9700

▶식당
바다회센타(054-791-4178): 따개비밥 1만5000원,
오징어내장탕 1만6000원(2인분)
보배식당(054-791-2683): 홍합밥 1만6000원
향우촌(054-791-8383): 약소 숯불구이(150g) 3만원, 약소육회(200g) 3만원
산마을식당(054-791-4643): 더덕전 1만2000원, 산채정식 1만5000원
신비섬(054-791-4460): 해계탕 15만원(4~6인 기준 2시간 전 예약), 전복 해계탕 20만원
신애분식(054-791-0095): 따개비 칼국수 7000원
용궁(054-791-7989): 자연산 모둠회 4만~6만원, 자연산 홍합탕 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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