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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조국에 돌아와서-이혜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동경에서 여비를 의논하리라고 생각했던 어느 분을 그날 아침에 나는 만나고 왔다. [그리비아]인쇄기 1호를 나를 위해서 부산까지 보내주마고 하던 분-(그 인쇄기의 수송에 편의를 얻으려고 그당시 해군참모총장이던 손원일씨를 만나기까지 했는데 어느 관청이 서류 일체를 잃어버렸다고해서 실현이 못된양 중단되어 있었다) [이탈리아]까지의 내왕여비는 [그리비아] 인쇄기의 가격에 비하면 10분의 1이 채 못되리라. 그분을 만나기만하면-그렇게 생각하고 온 것인데, 막상 만나고보니 전후에 크게 성공했다고 들었던 이 교포출신의 성공자는 무슨 탈세사건으로 전재산을 거의 잃어버리고 [기소]에 있던 30만 정보나 되던 산판도, 모조리 경매당했다는 이야기다.
처자들과 같이 [아파트] 한간에 사는 그 생활을 눈으로 보고는 더 무어라 입을 띨 용기가 없었다. 흥망성쇠가 아무리 삽시간이라고는 하나 설마 이토록 신속 깨끗하게 그분이 몰락해 버렸으리라고는 상상치도 못했던 일이다.
[이탈리아]까지 가고 못가는 것은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만일에 못가고 동경으로써 여정이 그친다고하면 또 어떤 군소리들이 돌 것이냐-. "남도 못가게 길만 막아버렸지" "[이탈리아]가 무슨 [이탈리아]야, 동경가는게 목적이지" 남의 탈 잡기를 삼시 밥먹기 보다 더 좋아하는 누구누구의 주둥아리가 족히 이런 소리쯤은 퍼뜨리리라. [베니스]에서 선걸음으로 되돌아오는 수가 있더라도 [이탈리아]까지는 가야겠는데-.
그냥 보내기가 민망해서 한 말인지는 모르나 아침에 만난 그분이 내왕여비를 어떻게 주선해본다고했다. 하오 다섯시란 그시간을 조마조마하면서 전화오기를 기다리던 참이다. 조일신문기자의 그 [인터뷰]를 받으면서도 내 생각은 전혀 딴 데 있었다.
기다리던 전화는 오지 않은 채 [인터뷰]는 마쳤다. [사까이]기자가 일어설 때 나는 웃으면서 "기사는 내 한말 그대로 조심해서 써 주시오. 가뜩이나 내 나라에서는 나를 친일파라고 그러는데요-, 만약에 그 기사로 해서 쫓겨나게 되면 한평생 [아사히]신문이 먹여 살려야 합니다"고 다짐을 했다.
그 농담을 [사까이]기자는 순전히 [농담]으로만 듣고 흘려버린 모양이다. 명색 일본서도 첫째로 헤이는 일류신문기자-게다가 내 역시집을 출판한 사람의 사위라는 친근감이 거들어, 설마 그런 오해받기 쉬운 기사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터이다.
동경닿은 나흘뒤에 같이 갈 일행 네명이 왔다.
다음날은 [이탈리아]로 떠나야 한다. 다른 이들은 무슨 재주로 어떻게 여비를 구했는지, 희한한 재간들이다. 아무도 그런 화제를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나는 혼자만 숙소를 동경역 옆에있는 [마루노우찌·호텔]로 옮기고 거기서 천명을 기다리기로 했다. 아는 이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어떻거실라우, 뗘나게되는거요?"-그렇게 묻는 이들에게 내 대답은 태연했다. "못가면 못갔지 어쩌겠소, [이탈리아]보다는 내인생이 더 중하잖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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