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1심 신뢰 확보가 진정한 사법 개혁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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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재판은 사회적 분쟁에 대해 법적인 판단을 내리는 과정이다. 민사 재판은 국민의 재산을, 형사 재판은 생명과 자유를 다룬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법원이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서울중앙지법이 어제 1심 재판 개선을 위한 토론회를 열어 재판 과정에서의 소통 강화를 모색하고 나선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토론회에서 제시된 대로 그간 재판에 대한 당사자들의 만족도가 낮았던 게 사실이다. 또 일부 판사들의 부적절한 법정 언행이 계속 문제가 돼왔다. “사건이 형식적·기계적으로 처리되고 있다”는 지적에도 일리가 있다. 그 결과 1심을 거쳐 2심, 3심까지 가는 비율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2008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전국 법원의 평균 항소율은 32.2%, 상고율은 30.5%에 달했다.

 이에 따라 ‘고비용 저효율’의 재판 시스템이 고착화되고 있다. 중복 심리, 사건 관계자들의 반복 출석 등으로 당사자들의 법률 비용은 커지고 재판의 효율성은 낮아지고 있다. 판사들의 업무 부담이 가중되면서 재판의 질은 더 나빠지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대법원에 한해 3만7267건(2011년 기준)의 사건이 쏟아져 들어옴에 따라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정책 법원으로의 발전은 답보 상태다. 법원과 재판이 정상화되려면 사건이 들어오는 입구인 1심에서 충실한 재판이 이뤄지고 그 판결에 당사자들이 승복하는 분위기가 정착돼야 한다. 이를 위해 1심에서 충분한 증거 조사와 함께 재판부-사건 당사자 간 의사소통이 유기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등 당사자를 낮춰 보는 듯한 ‘막말’이 없어져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판사가 법정에 나온 당사자들의 말을 성심성의껏 들어주기만 해도 법원과 재판에 대한 불만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이러한 여건이 마련될 수 있도록 대법원은 1심 인력 보강과 판사들의 ‘열린 재판’ 노력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사법 개혁은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