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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담보대출 2002년엔 사라진다

중앙일보

입력

필터 제작업체인 썸마이크로필터는 지난 1999년 '폴리머 유동물질 여과용 필터제작 방법' 이라는 기술을 담보로 제공하고 산업자원부의 추천을 받아 시중은행으로부터 4억1천6백만원을 대출받았다. 하지만 이 회사는 사업에 실패했고, 대출금은 산자부가 대신 물어줄 수밖에 없었다.

자본력이 취약하고 담보능력도 없는 중소벤처기업의 자금줄이 됐던 산자부의 기술담보대출 제도가 내년부터 없어진다.

부동산 등의 담보가 모자라 자금난을 겪고 있는 업체들은 기술담보 대출을 대폭 늘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산자부가 지난 5년간 운영해본 결과 사업화 성공률이 낮고 부실채권만 쌓였기 때문이다.

기술담보대출이란 우수한 기술을 보유했지만 부동산.채권 등 현물담보가 없어 금융기관의 문을 두드리기 어려운 중소기업을 위해 기술을 담보로 잡고 대출해 주는 제도.

기술이 자산인 벤처기업에게는 단비같은 존재지만 문제는 사업화에 실패하면 그 돈은 고스란히 날아가 국민세금으로 메꿔야 한다는 점.

◇ 쌓이는 부실채권=산자부가 97년부터 올 6월말까지 기술을 담보로 잡고 대출해 준 기업은 총 2백20개사. 대출금은 4백97억7천2백만원이다. 조건은 2년 거치 3년 분할상환.

하지만 대출받은 기업이 문을 닫거나 갚을 능력이 없어 산자부가 대신 은행에 물어준 손실보전액수가 이미 73억8천6백만원(31건)에 달한다.

올해 대출받은 기업의 상환만기가 2006년인 것을 고려하면 산자부가 대신 갚아야할 액수는 2백6억원(전체 대출금의 36.4%)이 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사업에 성공한 기업은 4곳에 불과하다.

◇ 이유는=기술평가를 할 수 있는 평가모델과 인력이 부족, 정확한 기술가치 측정을 못해 사업성이 없는 기업에 돈을 빌려줬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는 기술의 특성.시장성.전망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평가모델이 없다. 전문인력도 극히 부족한 상태다.

국내 대표적인 기술평가기관인 기술신용보증기금만 해도 전국에 8개의 기술평가센터를 두고 있지만 전문인력은 50명에 불과하다.

기술신보는 이에따라 교수.연구원 등 외부전문가 3백84명으로 전문가풀을 구성했지만 밀려드는 기술평가요청(지난해 8천3백건 처리)을 처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또 대부분의 평가기관이 교수.연구원 등 외부인사로 평가위원회를 구성하는데, 이들은 평가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평가가 부실해진다는 지적이다.

산자부 산업기술개발과 김재홍 과장은 "생명 주기가 짧은 기술의 담보가치를 정확하게 분석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기술담보사업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고 말했다.

대출받은 기업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도 문제다. 기술신용보증기금 관계자는 "대표이사나 대주주가 연대보증을 서지 않기 때문에 기업들이 기술담보대출을 '공짜로 생긴 돈' 정도로 생각, 낭비하는 경우가 많다" 고 말했다.

◇ 전망은=기술담보대출을 5년간 시범 운영한 산자부는 이같은 직접적인 지원책이 효과가 없다고 판단, 올해 말에 이 사업을 종료할 계획이다.

대신 평가모델개발.전문인력양성 등 기술평가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한국기술거래소.기술가치평가협회.산업은행 등과 함께 기술평가모델개발 추진팀을 구성, 연구에 들어갔다.

김종윤 기자 yoo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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