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잘 견뎌줘 고맙다”는 박찬호의 메시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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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호 02면

한국이 낳은 세계적 야구스타 박찬호의 은퇴 기자회견은 그가 남긴 메시지로 오래도록 기억될 만하다. 박찬호는 지난달 30일 “잘 견뎌낸 것에 대해 스스로 고맙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19년간의 프로야구 생활 중 마지막 1년을 고향 팬들을 위해 뛰었다. 국내에 복귀하면서 그는 모자에 ‘도전과 열정, 절제’라는 세 단어를 새겼다고 한다. 메이저리거인 그를 향해 주변에선 ‘말년에 초라한 꼴만 보여줄 수 있다’며 말리는 목소리도 컸다. 하지만 그는 야구인의 본분을 끝까지 지키고 도전해 훌륭한 피날레를 보여줬다.

그가 ‘코리안 특급’으로서의 명성뿐만 아니라 모범적인 선수 생활을 지킬 수 있었던 건 도전과 열정, 절제를 신조로 삼아 부단히 자기와의 승부를 펼친 덕택이다.

그의 도전과 열정은 감동적이다. 한양대 입학 뒤 1994년 미 LA다저스에 입단해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가 됐다. 그러나 단 두 경기 만에 마이너리그로 강등되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150㎞대의 강속구를 뿌리는 투수였지만 제구력에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절치부심하며 2년간의 마이너리그 생활을 극복하고 화려하게 부활했다. 당시 한국은 외환위기로 전 국민이 실의에 빠져 있었다. 미국의 메이저리그에서 선전하는 박찬호와 여자골프에서 승전보를 보낸 박세리는 우리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선사했다.

그의 절제는 또 다른 감동을 준다. 박찬호는 이날 회견장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메이저리그에서 첫 승을 했을 때보다 마지막 124승이 더 기뻤다”고 소감을 밝혔다. 자만하지 않고 절제하면서 한 게임씩 힘든 고비를 이겨낸 데 더 큰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선수 생활 중 그는 팬들을 불러모으는 스타였지만 국민을 실망시키는 음주·마약·섹스 스캔들과 담을 쌓았고, 지금까지 모범적인 가정을 꾸려 가고 있다. 팀 동료인 송신영 선수는 “명예와 부를 가졌지만 거드름 한 번 피우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아시아 최다승을 거둔 것은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했기 때문”이라고 치켜세웠다.

박찬호는 ‘야구계의 기부 대통령’으로도 유명하다. 난치병 환자와 자연재해 이재민을 돕는 것은 물론 유소년의 꿈을 키워주기 위한 장학회까지 운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기우일지 모르지만 혹여 정치권이 그를 이용하려 해선 안 된다. 박찬호가 정치 입문 의사를 갖고 있어서가 아니다. 4월 총선에 이어 대선 정국에서도 일부 스포츠 스타들이 정치적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채 진흙탕 싸움에 뛰어들어 국민을 실망시키는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찬호는 기자회견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다른 길이 아닌) 야구인으로서 축하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했다. 그의 소망대로 야구 지도자이건 경영자이건 변함없는 ‘국민 영웅’으로 남아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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