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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1000만 클릭 소녀…"그래미상 받고 싶어요"
가수 에일리(23·본명 에이미 리·한국명 이예진). 그를 두고 ‘혜성같이 나타난 신인’이라고 말하는 건 상투적이지만 어쩔 수 없다. 재미교포 3세인 에일리는 올 2월 데뷔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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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선들이 불러도 가는 박근혜
박근혜4, 5일 이틀 연속 초선 의원들과 오찬, 7일 의원총회 참석, 8일 의원 연찬회 참석….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이번 주 일정표다. 당내에선 이달 중으로 예정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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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TBC 패티김쇼 진행했죠, 한번 더 하고싶어요
26일 방송될 JTBC ‘신예리&강찬호의 직격토크-나는 누구냐’에 출연한 가수 패티김. [사진 JTBC]“내년에 은퇴하기 전 JTBC에서 ‘패티김쇼’를 부활시키고 싶습니다.” 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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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티김 "이병헌의 식스팩 보고 싶다"
JTBC 시사토크쇼 ‘신예리, 강찬호의 직격토크’가 한국의 디바, 패티김을 만났다. 패티김은 데뷔 55주년이 되는 내년에 무대를 떠나겠다고 밝혔다. 그녀는 "은퇴란 무대에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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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세 패티 김의 퇴장 … “일그러진 사진은 싣지 마세요, 호호”
1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은퇴회견을 연 패티 김. “정상의 자리에 있을 때 멋진 모습으로 스스로 내려오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씨 바로 뒤로 가수 데뷔 직후인 20대 시절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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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한 얼굴 70년대 트로이카 … 반가워라 그 시절 희귀 영상자료
197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로 불렸던 유지인(왼쪽)·정윤희(가운데)·장미희. 흑백 영상이지만 앳된 얼굴이 매력적이다. 이들은 각각 TBC 드라마 ‘땅에 묻은 노래’(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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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 아닌 영원한 딴따라…복 터져 세계적 뮤지션들 만났죠
올해 무대 데뷔 60년을 맞은 윤복희씨. 스스로를 ‘딴따라’로 칭할 만큼 자신감이 넘친다. 다섯 살 때부터 쌓아온 ‘끼’의 자연스런 발현일까. 머리가 희끗한 그가 30일부터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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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남긴 숱한 명곡, 흥얼댈 줄 모르는 한국인 있을까요
1960∼70년대 한국 가요계를 이끌었던 원로 작곡가 박춘석씨가 14일 오전 6시 자택에서 별세했다. 80세. 16년간의 힘겨운 투병을 뒤로 하고 조용히 숨을 거뒀다. 한국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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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옥윤 부르며 패티김에게 프러포즈
“예술은 운명도, 사랑도 뛰어넘는다.”한때 부부의 연을 맺었던 이 음악가 커플을 보며 생각해본다. 남편이 작곡한 곡을 아내가 부르면 어느 청중이든 감동하게 만드는 노래가 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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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인생 전환 ④ 화려한 무대 떠나 30년 화가인생 일군 정미조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중략)/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런 약속이 있었겠지요” 서글퍼라, 불운한 시대의 사랑이여. 어쩌자고 이들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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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인생 전환 ④ 화려한 무대 떠나 30년 화가인생 일군 정미조
서울 홍릉 KAIST 갤러리에서 30년 화업을 결산하는 개인전을 연 정미조씨는 “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13년 파리 유학생활 동안 외식도 삼갈 만큼 노력했다”고 말했다. 최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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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120. 빅3 콘서트
한국 대중가수로는 최초로 2000년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콘서트를 열었을 때의 필자. 2000년대 들어 한 공연 중 가장 기억에 남고 의미도 컸던 것을 꼽으라면 호주 시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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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109. 노래 경매
199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으로 한인 사회가 큰 피해를 당했을 때 LA한인회·LA한국일보가 ‘방범(防犯)기금 마련 콘서트’를 열었다. TV·신문에 보도된 당시 LA의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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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97. 88서울올림픽
데뷔 30주년 무렵의 필자. 멋진 기념공연을 생각했으나 1988년 서울올림픽 때문에 1년을 미뤄야만 했다.1958년 여름, 미8군 쇼에서 가수로 데뷔했으니 88년은 데뷔 30주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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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 스테이크, 취나물 버터구이 … 세계가 반할 한국요리 기대하세요”
서울 시내 한 레스토랑에서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레오 강이 재료를 다듬고 있다. 요리사 레오 강(33)의 팔뚝엔 여기저기 화상 자국이 많다. 영국 런던의 여러 레스토랑 주방을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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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6)
쉽지 않은 결혼생활, 음악적 성공 그리고 이혼과 함께 온 최대의 위기 55. 불화의 싹 베트남 위문공연을 마치고 서울 세검정 신혼 집으로 돌아오자 길옥윤 선생의 생활 태도는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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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68. 셀 수 없는 ‘최초’
유럽 5개국을 돌며 TV쇼를 촬영할 당시의 필자.해방 뒤 일본 정부가 공식 초청한 최초의 한국 가수(1960년), 대중가수 최초로 리사이틀이라는 표현 사용(62년), 국내 최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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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67. ‘패티 김 쇼’ 인기
‘패티 김 쇼’를 진행하는 필자.‘매주 수요일은 패티 김 쇼 방송 시간에 맞춰 집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으면 도중에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갈아타고라도 급히 들어온다’는 사연을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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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66. ‘패티 김 쇼’ 신설
TBC -TV 프로그램 ‘패티 김 쇼’에 출연한 필자.뮤지컬 ‘살짜기 옵서예’ 공연이 성황리에 끝났다. 나는 일약 ‘한국 최초 창작 뮤지컬의 히로인’이 됐다. 그 인기를 배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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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63. 최초의 뮤지컬
뮤지컬 공연보다 앞서 발매된 앨범 ‘살짜기 옵서예’. 길옥윤 선생에게 술은 유일한 도피처이자 안식처였다. 반면 그 술은 우리 결혼 생활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됐다. 결혼 초기부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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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44. 길옥윤과 재회
길옥윤씨와 다정히 얘기하고 있는 필자.경동맥 파열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어머니가 큰 수술을 받고 다행히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수술을 집도했던 의사 선생님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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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38. 뉴욕을 향해
뉴욕 번화가에서 포즈를 취한 필자.라스베이거스에 온 지도 1년이 넘었다. 1년 이상 장기 공연했던 ‘플라워 드럼 송’도 막을 내렸다. 라운지 가수로 단조롭게 지내고 있을 무렵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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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37. 가수생활 첫 위기
‘패티 김의 아메리칸 데뷔’라고 씌어 있는 영문간판 앞에 선 필자. 라스베이거스에서 라운지 가수로 활동할 때다.미국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 사는 중국인 이민자의 삶을 다룬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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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36. ‘플라워 드럼 송’
뮤지컬 ‘플라워 드럼 송’의 팸플릿과 필자를 소개한 기사들.매주 수요일 라스베이거스 호텔들은 순번을 정해 특별공연을 했다. 당시 각 호텔은 매일 오후 8~10시와 오후 11시~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