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109. 노래 경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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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199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으로 한인 사회가 큰 피해를 당했을 때 LA한인회·LA한국일보가 ‘방범(防犯)기금 마련 콘서트’를 열었다. TV·신문에 보도된 당시 LA의 모습은 매우 처참했다. 미국 이민 1세대가 땀으로 일군 열매가 막 여무는 때에 일어나 더욱 안타까웠다.

나는 이왕 기금 마련 콘서트를 열었으니 돈을 많이 벌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1시간 정도 공연한 뒤 노래 경매를 제안했다. 꼭 듣고 싶은 곡을 신청한 관객에게 노래를 들려주고 기부금을 내게 하는 것이었다. “‘초우’ 500달러!”

나는 공연 관계자들에게 바구니를 들고 가서 기부금을 받으라고 한 뒤 노래를 불렀다. 노래 경매는 1000달러, 2000달러, 3000달러짜리 앙코르로 이어졌다. 7, 8곡 부르고 난 다음이었다. “‘이별’ 5000달러!”

신청자는 영화감독 신상옥씨와 부인 최은희씨였다. 나는 그들 부부가 앉은 테이블 옆에서 ‘이별’을 불렀고,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5000달러짜리 수표를 냈다. 안타깝게도 5000달러 이상을 부르는 이가 없어 그날 경매는 그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관객이 너나 없이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다. 돈을 벌어주기로 작정한 바에야 끝까지 하자는 생각에 나와 단독으로 사진을 찍기를 원하면 한 컷에 20달러씩 기부함에 넣으라고 했다. 사진을 찍겠다며 줄을 선 사람들이 공연장 로비를 가득 메웠다. 팬들도 나와 한마음이 된 것이다. 이후 각종 자선기금 마련 콘서트에서 종종 노래 경매를 했다. 예상보다 많은 기금이 모이기도 했다. 94년 무렵 가정폭력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는 자원봉사단체인 ‘인천 여성의 전화’에서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다. 피해 여성들의 전화상담과 쉼터 마련을 위한 기금이 부족하니 도와 달라는 내용이었다. 편지 봉투에는 피해 여성들과 어린이들의 사진이 함께 들어 있었다. 구구절절이 참담한 실태를 보여주는 편지 내용과 사진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돕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 단체를 돕기로 하고 이후 3년간 후원활동을 했다. 후원금 모금을 위한 콘서트를 자주 열었다. 100% 무료 출연에 경비도 모두 자비로 부담한 그야말로 자선 쇼인 셈이었지만 단 한 가지 조건만 이야기했다. 콘서트로 조성한 기금은 절대 그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급여라든가 경비로는 사용할 수 없고, 단지 쉼터를 만드는 데만 쓰기로 약속해 달라는 것이었다.

누구라도 본래 취지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으로 고통 받는 여성들을 도우려고 모은 기금이라면 한 푼이라도 그들을 위해 써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패티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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