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37. 가수생활 첫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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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패티 김의 아메리칸 데뷔’라고 씌어 있는 영문간판 앞에 선 필자. 라스베이거스에서 라운지 가수로 활동할 때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 사는 중국인 이민자의 삶을 다룬 뮤지컬 ‘플라워 드럼 송’에서 나는 주인공을 사랑하는 재봉사 역할을 맡았다. 처음으로 선 메인 쇼 무대였다. 비록 조연이었지만 주인공을 사랑하는 배역이라 솔로가 두 곡이나 됐다.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한 채 짝사랑하는 남자를 그리워하며 혼자 노래를 부르는 장면도 있었다. 뮤지컬에 나오는 모든 노래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러브 룩 어웨이(Love look away)’였다.

사실 ‘플라워 드럼 송’ 전까지 뮤지컬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배우로 무대에 서서 뮤지컬을 처음 경험한 것이다. 심지어 당시 출연 배우들 중 미국에 처음 온 지 몇 개월밖에 안 된 동양인은 내가 유일했다. 대부분 이민 2세였고,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오래 전 미국에 온 일본인 여자 한 명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첫 무대에 서는 순간부터 뮤지컬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래! 뮤지컬 배우가 되는 거야! 유명 뮤지컬 무대에 서면 어떻게든 누군가의 눈에 띌 테고, 그러면 솔로 가수로 데뷔하는 것도 문제 없을 거야!”

물론 아직은 그저 평범한 가수일 뿐이었다. 하지만 자신감은 있었다. 우리나라나 일본에서처럼 여기서도 에드 마스터즈, 밥 맥 맥켄스와 같은 사람의 눈에 띄어 발탁되기만 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플라워 드럼 송’은 라스베이거스에서도 1년 이상 장기 공연됐고, 나는 전속으로 출연했다. 하지만 ‘플라워 드럼 송’ 공연이 끝난 뒤 나는 다시 라운지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이렇다 할 쇼 무대에 설 기회를 찾지 못했다. 밥 맥 맥켄스의 주선으로 라스베이거스 외 미국 내 여러 힐튼호텔을 돌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지만 역시 라운지 가수였다.

그러는 사이 단조로운 라스베이거스 생활에 점점 싫증 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게 꿈인가 싶을 정도로 가슴을 설레게 했던 시나트라의 공연도 여러 번 보다 보니 감흥을 못 느꼈고, 호텔 라운지에서 서너 곡의 노래를 반복적으로 부르는 생활도 따분했다.

무엇보다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박하려고 온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라스베이거스라는 도시 자체에 흥미를 잃어갔다. 어디를 가든 슬롯머신이 있고, 헐렁하고 편안한 반바지 차림에 슬리퍼를 신은 관광객이 가득한 라스베이거스. 도박을 하거나 술을 마시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그 곳에서의 삶은 내 꿈을 이루는데 더 이상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동안 순조롭기만 했던 가수 생활에도 처음으로 위기가 찾아오는 듯했다. 미국에 가기만 하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와 쇼 비즈니스의 본고장에 가서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점점 없어졌다.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 길을 찾을 수도 없었다.

패티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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