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67. ‘패티 김 쇼’ 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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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패티 김 쇼’를 진행하는 필자.

‘매주 수요일은 패티 김 쇼 방송 시간에 맞춰 집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으면 도중에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갈아타고라도 급히 들어온다’는 사연을 보내올 정도로 프로그램이 인기 있었다.

하지만 생방송 프로그램이다 보니 웃지 못할 해프닝도 꽤 많았다. 언젠가 한번은 노래를 부르는데 갑자기 가사가 꽉 막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 것이었다. 가사가 떠오르지 않는다고 하면 누군가 한두 마디 알려줬을 것이고, 그러면 금세 다시 생각 나 방송이 매끄럽게 진행되었을 텐데 그때는 도대체 왜 그랬는지 가사를 잊어버린 대목부터 시종일관 “랄랄라~”로 얼버무려 노래 한 곡을 끝내버렸다. 얼굴은 천연덕스러웠지만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어찌나 줄줄 흘러내리던지….

그런가 하면 당시 수많은 신인 가수가 ‘패티 김 쇼’에 출연하기 위해 애썼다. 실제로 지금은 유명해진 후배들 중에 당시 ‘패티 김 쇼’로 데뷔한 가수도 꽤 많다. 1960년대 말 미8군 쇼 무대에서 활동했던 후배 가수 조용필이 처음 출연한 TV프로그램도 ‘패티 김 쇼’였다고 한다.

반면 ‘패티 김 쇼’로 조금 더 일찍 데뷔할 뻔 했지만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그 기회를 놓쳐버린 가수도 있었다. 그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은 바로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른 가수 하수영이다. 그의 하얀 피부와 호감 가는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말수는 적었지만 유달리 마음이 곱고 착한 청년 하수영은 오직 가수가 되겠다는 꿈과 고물 기타 하나 달랑 메고 부산에서 무작정 상경해 당시 유명 작곡가였던 길옥윤 선생을 찾아왔다고 한다. 이런 저런 심부름과 잡일을 시키며 음악을 가르치던 길 선생이 그에게서 어떤 재능을 발견했던지 하루는 ‘패티 김 쇼’에 출연시켜보자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어렵사리 출연이 결정되었다. 무명이나 다름 없는 신인 가수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그런데 막상 방송이 시작되자 그가 온 데 간 데 없다는 것이었다. 설마 출연할 차례가 되면 나타나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일단 방송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생방송이었기 때문에 무명가수 한 명을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그의 출연은 없었던 걸로 하고, 내가 예정에 없던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방송을 마무리했다. 방송이 다 끝나고 나서야 그가 허겁지겁 나타났는데 사연인즉, 너무 긴장한 나머지 대기실에서 잠들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76년, 하수영은 결국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로 데뷔했다. 그리고 수많은 대한민국 남편이 아내에게 이 노래를 바쳐 감동도 자아내고, 대히트도 기록했지만 그는 비운을 타고났던 모양이다. 한창 활동해야 할 젊은 나이에 뇌출혈로 쓰러져 영영 일어나지 못했으니 말이다.

패티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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