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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두더지人生...발굴40년: 44.과학적 조사 병행
유물은 한점도 나오지 않았지만 발굴조사를 통해 거창 둔마리 고려시대 무덤의 구조와 축조방법 등을 속속들이 알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벽화였다. 회칠한 벽면은 도굴되는 과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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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두더지인생...발굴40년:39.암사동 선사유적 발굴
무령왕릉 발굴로 다사다난했던 1971년 한 해를 보내는가 했는데 11월 들어 생각하지도 않은 강동구 암사동 선사유적 발굴에 참여하게 됐다. 암사동 선사유적은 워커힐 건너편의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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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두더지인생...발굴40년: 38.무령왕릉 유물 전시
무령왕릉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번엔 유물들을 빨리 전시하라는 여론이 빗발쳤다. 박물관 전시는, 출토유물 정리는 물론 충분한 연구를 통해 완벽에 가까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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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두더지人生...발굴40년: 37.때늦은 후회
고대 왕릉의 발굴은 무령왕릉이 지금까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런 귀중한 기회가 일생에 한번이라도 찾아온다면 고고학도로서는 그만큼 큰 행운이다. 변명이 되겠지만 무령왕릉 발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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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話 두더지 人生...발굴40년: 36 무령왕릉 유물 조사단
1971년 7월 16일 드디어 무령왕릉 발굴유물을 공주박물관에서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송했다. 먼동이 트기 전 새벽 공기를 가르고 공주경찰서 무장경관들의 호위 속에 2천여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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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話 두더지 人生...발굴40년: 35 무령왕릉 유물 이전 소동
무령왕릉 발굴유물을 서울로 옮겨가지 못하게 막은 공주읍민들의 시위는 농성으로 발전했다. 7월 13일 하루 종일 공주읍 전체가 들썩거렸고 농성은 이튿날에도 계속 됐다. 밤에는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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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話 두더지 人生...발굴40년: 34 무령왕릉 유물 수습
무령왕릉 내부 실측작업이 밤 10시쯤 끝나자 곧바로 유물 수습작업이 이어졌다. 2개조가 꾸려져 무덤 내부의 동쪽 편은 김원룡 단장과 지건길이, 서쪽 편은 김영배 공주박물관장과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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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話 두더지人生...발굴30년: 33 무령왕릉 첫 조사자
무령왕릉을 야간 발굴하기로 결정하자 한가지 문제가 걸렸다. 내부를 밝혀야 하는데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았던 것이다. 부랴부랴 공주 군청에 요청해서 발전기 한 대를 빌렸다.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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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話 두더지 人生...발굴40년: 31 영동대장군 백제사마왕
무더운 한여름 오후 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는 찜통같은 날 무덤 입구를 막았던 맨 위 벽돌(塼) 한장을 들어내자 순간 성애같은 하얀 기운이 순간적으로 뿌옇게 서렸다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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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話 두더지 人生...발굴40년:30 입구 드러낸 무령왕릉
윤홍로(尹洪) 기사로부터 상황을 보고받은 당시 허련(許鍊) 문화재관리국장은 다음날 아침 장관 주재 회의에서 윤주영(尹胄榮) 문화공보부(현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공주의 상황을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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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향한 그 뜨거운 열정… 故 이종석 기증 유물전
이종석(1933∼91·사진)은 언론인으로 출발했으나 문화재 발굴 현장에 삶을 묻은 미술사가였다. 문화부 기자로 일하면서 우리 전통미술에 대한 사랑을 키운 그는 학계 선배들보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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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4話 두더지 人生...발굴40년 :29 공주 무령왕릉 발굴
1971년 봄 신혼생활의 재미를 느낄 겨를도 없이 결혼 직후 곧바로 소양강 댐 수몰지구 발굴조사에 참여하고 돌아오자 이번에는 공주의 백제 무령왕릉(武寧王陵) 발굴이 기다리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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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두더지人生...발굴40년:26.신혼 단꿈도 잠시…
불국사 구품연지 발굴에 경주 안계리 신라 고분군 발굴에 이어 매달리다 보니 1970년이 훌쩍 지나갔다. 이듬해인 1971년은 내 인생에 있어서 여러 의미로 잊을 수 없는 한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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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두더지人生...발굴40년: 1. '고고학'과의 인연
중앙일보로부터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연재를 제의받고는 한동안 어리둥절했다. 내 나이 이제 겨우 환갑을 넘겼는데 그런 일을 맡는다면 많은 선배들이 아마 '고얀 녀석'으로 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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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충남 백제 문화권
남 부여와 공주는 백제의 고도(古都)다. 백제는 초대 온조왕에서 마지막 의자왕까지 31명의 왕이 6백여년의 짧지 않은 기간 중 위례(서울)·웅진(공주)·사비(부여) 등 세 곳에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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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외길 문화재 연구직 퇴임
"나처럼 행복한 사람도 없을 거요. 평생 서울의 중심인 경복궁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았으니까… 허허." 문화재에만 매달려온 33년의 공직생활을 마감하는 조유전(趙由典·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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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삼불에 대한 반론 지면 통해 하라
미국의 지성 노엄 촘스키 교수는 기벽(奇癖) 이 하나 있다. 그는 여하한의 학술모임에도 일절 참석하지 않는다. 1995년에 쓴 편지(『촘스키,끝없는 도전』,그린비,1998) 를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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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삼불에 대한 반론 지면 통해 하라
미국의 지성 노엄 촘스키 교수는 기벽(奇癖)이 하나 있다. 그는 여하한의 학술모임에도 일절 참석하지 않는다. 1995년에 쓴 편지(『촘스키,끝없는 도전』,그린비,1998)를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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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 배우자는 후비" 주장
무령왕릉 발굴 30돌을 맞아 무령왕 옆에 묻힌 여주인공이 왕비가 아니라 후비였다는 새로운 주장이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무덤에서 수습된 왕비의 치아를 감식한 결과 30대 초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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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30주년 기념 무령왕릉 유물 공개
한국 고대미술사의 최대 보고로 일컬어진 백제 무령왕릉 발굴이 이달 5일로 30주년을 맞이한다. 당시 발굴된 2천9백여점의 유물을 통해, 기록 등이 남아 있지 않아 잘 알 수 없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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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나들이 명소] 국립공주박물관
충남 공주 도심속 조그만 야산 기슭에 자리잡은 국립공주박물관은 무령왕 덕분에 세워진 박물관이다. 1971년 세계 고고학계 이목을 집중시켰던 발굴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73년 완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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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의 공간1번지] 22. 백제 무녕왕릉
우리 나라의 역사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2천여년간 많은 왕의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고려와 조선시대의 왕을 제외하면 그 이전 왕들의 무덤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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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 모형관 건립… 유물도 전시
충남 공주시는 8일 영구보존을 위해 폐쇄한 무령왕릉의 모형관을 내년말까지 건립하기로 했다. 공주시가 송산리 고분군 지역에 세울 모형관은 3백50평 규모로 모두 47억원이 투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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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고고학자들의 손에 땀쥐는 유물 발굴기
역사 대중화에 이어 고고학 대중화를 내건 책 한권이 나왔다. 발굴현장의 고고학자 스물 다섯 사람의 경험담을 한데 〈유물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이다. 1천여명의 발굴요원이 1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