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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충남 백제 문화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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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남 부여와 공주는 백제의 고도(古都)다. 백제는 초대 온조왕에서 마지막 의자왕까지 31명의 왕이 6백여년의 짧지 않은 기간 중 위례(서울)·웅진(공주)·사비(부여) 등 세 곳에 도읍을 옮겼던 왕조다.

백제의 마지막 왕(의자왕)이 나당(羅唐)연합군에 의해 패망한 곳이 바로 부여다. 삼천궁녀는 낙화암(落花岩)에서 백마강으로 몸을 던져 나라잃은 설움을 죽음으로 항변했다고 하며, 계백장군은 자신의 처자식을 칼로 베고 5천 결사대와 함께 황산벌에서 5만명의 나당연합군과 일전을 벌이다 산화했다.

그런가 하면 30여년 전 공주 송산리에서는 무령왕릉이 발굴돼 백제 왕릉으로는 처음으로 주인이 밝혀져 국민적 관심을 모았었다. 이렇듯 부여·공주는 5세기 후반부터 1백80여년간 백제문화의 중심으로 찬란한 문화를 이루었던 곳이다. 그중 가장 화려한 문화를 꽃피운 곳은 사비성 부여로 백제문화를 감상하려면 부여부터 들러보는 것이 좋다.

낙화암은 부여의 상징이다. 낙화암이 있는 부소산성을 찾아가 본다. 이곳에는 고란약수를 마시면 3년은 젊어진다는 전설을 간직한 고란사, 삼천궁녀의 넋을 달래기 위한 궁녀사, 해맞이를 했던 영일루, 백제 충신인 성충·흥수·계백을 모신 삼충사 등 많은 유적지가 있다. 이렇듯 발길 닿는 곳마다 백제의 역사 이야기가 곳곳에 묻어나는 곳이 바로 부소산성이다. 산책로를 따라 둘러보는데는 두시간여가 걸린다. 고란사에서는 유람선이 구드래나루까지 수시로 오간다.

이어서 동성왕 23년(서기 501년)에 도성을 방비하기 위해 돌로 쌓은 성흥산성(부여군 임천면 군사리)을 찾아간다. 백제시대 대표적인 산성이며 미륵보살입상으로 유명한 대조사가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천연암석을 이용해 만든 10m 높이의 석불이다. 논산 관촉사의 은진미륵과 함께 거불(巨佛)로 쌍벽을 이룬다. 부여읍내에서 승용차로 20여분 거리.

그리고 저녁에는 구드래 나루터에 조성된 조각공원에서 이 지역 출신 조각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며 달빛에 잠긴 백마강을 거닐어 본다.

다음날은 백제 무왕의 탄생 설화가 얽힌 궁남지와 부여국립박물관을 찾아간다. 마래방죽이라고 불렸던 궁남지는 원래 규모의 3분의1 크기로 1967년 복원된 늪지다. 백제의 서동은 적의 사정을 정탐하기 위해 신라에 잠입했다가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를 만나 '서동요'로 아내를 삼게 된다. 그는 훗날 백제의 30대 무왕에 오른다.

무왕은 신라에 두고 온 가족 생각에 마음 고생을 하던 선화공주를 달래기 위해 백마강에서 10리나 되는 물줄기를 끌어와 궁남지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국내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가꾸어진 정원이라 할 수 있다. 궁남지는 둥그런 원형으로 만들어진 못 가운데에 있는 포룡정(抱龍亭)까지 나무다리가 걸쳐 있다. 이른 새벽 자욱하게 깔린 안개속에 무왕과 선화공주의 애틋한 사랑을 떠올리며 나무다리를 건너본다.

부여박물관에서는 백제문화의 최대 걸작으로 불리는 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와 백제의 미소인 금동미륵보살반가상(국보 제83호)을 만나게 된다. 이밖에도 능산리 고분군·정림사지 5층 석탑 등도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백제의 두번째 도읍이었던 공주에서 백제 증흥의 기틀을 잡은 임금이 바로 무령왕이다. 무령왕릉은 1971년 1천4백여년의 잠에서 깨어나 처음으로 우리에게 모습을 나타냈다. 내년 4월 모형 왕릉이 완공될 때까지 무료로 입장한다.

그리고 공산성과 곰나루, 공주국립박물관을 찾아가면 된다. 무령왕비의 동탁 은잔은 백제 특유의 부드러운 곡선미를 지니면서 표면에 섬세하고 화려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 금동대향로와 더불어 백제 금속공예의 백미로 손꼽힌다.

길을 돌려 차령고개를 넘어 천안으로 들어오다 보면 천안시 병천면 병천(아우내)으로 길이 이어진다. 이곳은 3·1운동의 발상지. 독립기념관과 유관순열사 유적지, 그리고 독립운동을 했던 이범석·이동녕 선생의 생가가 있다. 백제의 고도를 돌다보면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고 섬세하면서도 품격높은 그들만의 문화를 만나게 된다. 부여의 5일장(5·10일)에서 만난 나물 파는 아낙네의 모습에선 백제의 아름다운 미소를 엿볼 수 있었다. 오늘도 백마강에는 곱게 부서진 달빛만 강물을 타고 흘러내려간다.

충남=김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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