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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특수부대가 전두환 제거? 동생 전경환 집으로 숨었다 유료 전용
「 한남동의 총소리 」 「 5회. 쿠데타와 미국, 그리고 CIA 」 12·12를 이해하는 데 미국이 빠질 수 없다. 일차적으로 작전통제권을 미군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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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총소리에 뒷담 넘었다…쿠데타에 3번 숨은 국방장관 유료 전용
「 한남동의 총소리 」 「 4회. 12·12는 5·16의 데자뷔 」 12·12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결정적 원인은 군 수뇌부가 우유부단했기 때문이었다. 최고책임자인 국방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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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택연금 DJ ‘깜짝 외출’ 뒤엔, 박정희 미워하는 카터 있었다 유료 전용
「 궁정동의 총소리 」 「 5회. 보이지 않는 손, 미국 」 해방 후 한반도의 명운을 좌우한 결정적 변수는 미국이다. 한·미 관계의 핵심 이슈는 주한미군 철수다.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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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향해 조명탄 날렸다…‘박정희 양아들’ 만든 사건 셋 유료 전용
「 궁정동의 총소리 」 「 3회. ‘박정희 양아들’ 전두환 」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등장하자마자 박정희 대통령의 양아들이란 소문이 나온 것은 그만큼 박정희가 전두환을 총애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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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사령관 “내 허락 없었다” JP “누가 혁명을 신고하나” (14) 유료 전용
1961년 5월 18일 저녁 어스름. 혁명의 성공이 확신으로 예감됐다. 육본에 있는 나를 미8군 정보장교 몰 대위가 찾아왔다. 매그루더(Carter B. Magruder·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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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 보고도 없이 장도영 체포…박정희 “혁명에도 의리 있다” (17) 유료 전용
「 JP에게 늘 의문의 인물이 있었다.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내각수반, 국방부 장관, 육군참모총장, 계엄사령관의 5개 직책을 한 손에 쥐고 있던 장도영이다. 그는 혁명세력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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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에 “꼬맹아” 부른 동기…이한림 체포, 혁명 완성됐다 (13) 유료 전용
「 역사는 의지로 쓰여진다. 5·16의 성패는 인간 의지로 갈렸다. 거사의 설계자인 김종필(JP)은 “성공 요체는 의지”라는 확신을 전파했다. 전격적으로 실천했다. 이한림 1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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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회의 평균 나이는 39세…사진 한 장이 보여준 새 권력 (15) 유료 전용
1961년 5·16은 구질서의 권위와 기능을 정지했다. 그날 내가 작성해 KBS 방송으로 내보낸 포고문(4호)은 이랬다. “군사혁명위원회는 오늘 오전 7시를 기해 일체의 장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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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간 박정희·장도영…윤보선 “올 것이 왔구먼” (12) 유료 전용
「 5월 16일, 긴박한 상황의 연속이다. 그 격한 흐름을 주도해야 한다. 수단은 선제 공세와 신속한 기정사실화다. 상대의 허(虛)를 찌르고 심리전도 펼쳐야 한다. 궐기군의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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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죽자고 혁명했다…5·16 설계자, JP의 고백 (1) 유료 전용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2014년 10월부터 '김종필 증언록'을 위한 인터뷰를 했다. 그의 기억력은 녹슬지 않았다. 반세기 먼 세월이 어제 같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오른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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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아니면 '아니오' 해야지 (38)
(38) 육본회의 내가 용산 육군본부에 도착한 것은 16일 오후 2시쯤. 나는 참모총장실로 직행했다. 장도영 총장과 박정희 장군이 앉아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단도직입적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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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아니면 '아니오' 해야지(39)
39. 연금되다 17일 상황은 유동적이었다. 쿠데타가 발생하고 24시간이 지났지만 쿠데타를 일으킨 쪽이나 저지하려는 쪽 어느 쪽도 사태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매그루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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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가장 길었던 사흘(4)
한강의 총격전은 0시의 출동부대를 불안하게 했다. 장도영 참모총장의 진압명령이 건성이 아닌 것 같다는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한강의 제2 저지선이 손쉽게 뚫리고 마지막 제3 저지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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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국가재건최고회의」(7)
박정희 최고 회의의장이 8·12 민정이양 스케줄을 발표한지 꼭 한 달이 되는 9월12일 백악관은 「케네디」대통령이 박 의장을 오는 11월 중순 방미토록 초청했다고 발표했다.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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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잡으러오겠다니 체포하라" 명령
5월17일 5·16출동부대의 긴장은 유엔군사령부의 참모회의에서 시작되었다. 회의내용은 극비였다. 소문은 야전군을 추축으로한 서울진입작전회의라는 것. 확실히 야전군을 주축으로한 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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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가장 길었던 사흘(8)
장도영 참모총장이 다시 방첩대로 돌아온 것은 5월16일 0시가 지나서였다. 출동을 중지하라는 총장의 지시는 집행되지 않은 채였다. 부대의 웅성거림은 계속되고 있었고 수습 특명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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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4·26 이 대통령하야성명」에 관하여
(승전)경무대의 관례에 따라 정식재가는 청서를 한 후에 받게되어 있는 까닭으로, 청서를 하기 위하여 우리들은 대통령집무실에서 나왔다. 이때 밖에서는 10만여의 「데모」군중이 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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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 위기수습에 부심-워터게이트 사건
【워싱턴 29일 UPI동양】「닉슨」미대통령은 29일 그의 오랜 정치생활 중 가장 큰 위기의 하나인「워터게이트」 미 민주당본부 도청사건수습책과 그의 백악관보좌관 2명이 사건 후 은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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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게이트」 관련자 닉슨, 해임 고려
【워싱턴 23일 AP합동】「닉슨」 대통령은 작년 6월의 「워터게이트」 민주당본부 도청사건에 관련된 혐의로 「존·N·미첼」 전 법무장관과 「존·W·딘」3세 백악관 법률고문 및 「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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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 재선위 부위장 매그루더 실형
【워싱턴21일AP합동】「닉슨」재선위원회 부위원장이었던「젭·스튜어트·매그루더」씨(39)가 21일「워터게이트」침입사건과 도청 및 은폐계획에 가담한 혐의로 단기 10월·장기 4년간의 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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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졸업생들
그러면 5·16당시의 전방, 즉 1군사령부 사정은 어떠했는가 보자. 1군사령부의 상황은 이미 여러번했기 때문에 대강의 줄거리만 기술할까 한다. 1군산하의 5군단장 박림항중장(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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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게이트10년 주역들은 잘 살고 있다|회고록 쓰고 TV출연…"억만장자" 닉슨
1972년 6월17일 새벽2시,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미국 민주당 전국본부 사무실에 숨어들었던 다섯 사내가 형사들에게 붙들렸다. 대통령선거를 불과 넉 달 남짓 앞둔 때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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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9화 육사졸업생들|1군내 혁명세력
이야기가 잠시 옆길로 빠졌었는데 다시 1군사령부의 사정, 특히 8기생들의 활약을 중심으로 얘기하겠다. 군은 어디까지나 계급과 직위에 따라 명령·복종관계의 엄격한 조직체재하에 움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