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간 박정희·장도영…윤보선 “올 것이 왔구먼” (12)

  • 카드 발행 일시2023.08.09

5월 16일, 긴박한 상황의 연속이다. 그 격한 흐름을 주도해야 한다. 수단은 선제 공세와 신속한 기정사실화다. 상대의 허(虛)를 찌르고 심리전도 펼쳐야 한다. 궐기군의 세력은 작다. 전체 60만 대군 중 3600명에 불과하다. 기습적인 상황 장악으로 장애를 돌파해야 한다. 그 기세로 거사를 성공시킬 수 있다.

1962년 5월 16일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오른쪽 둘째)이 5·16 거사 1주년을 맞아 안국동 광명인쇄소를 찾았다. 왼쪽부터 김용태 정보부장 고문, 이학수 광명인쇄소 사장, 김 부장, 이낙선 최고회의의장비서관. 김 부장은 이낙선 소령과 광명인쇄소에서 ‘5·16혁명 취지문’과 포고문 30만여 장을 찍는 일을 독려했다. 이학수 사장은 박정희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무료로 인쇄해 줬다. 사진 김종필 전 총리 비서실

1962년 5월 16일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오른쪽 둘째)이 5·16 거사 1주년을 맞아 안국동 광명인쇄소를 찾았다. 왼쪽부터 김용태 정보부장 고문, 이학수 광명인쇄소 사장, 김 부장, 이낙선 최고회의의장비서관. 김 부장은 이낙선 소령과 광명인쇄소에서 ‘5·16혁명 취지문’과 포고문 30만여 장을 찍는 일을 독려했다. 이학수 사장은 박정희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무료로 인쇄해 줬다. 사진 김종필 전 총리 비서실

16일 새벽 4시15분 김윤근 준장과 오정근 중령의 해병1여단은 한강다리를 돌파했다. 선두 해병대 대열의 박정희 소장은 안국동 광명인쇄소로 왔다. 그는 총격전의 흥분과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그에게 혁명 취지문을 건넸다. 막 인쇄된 활자의 냄새가 풍겼다. 박 소장은 차분하게 자세를 바꿨다. 혁명의 격문을 한자 한자 점검했다. 그리고 박 소장과 나는 남산의 KBS 라디오방송국으로 향했다. TV가 없던 시절이다. 방송국은 공수단이 점령하고 있었다.

숙직 직원 대부분이 도망쳤다. 우리는 “박종세 아나운서(당시 26세), 어디 있느냐”고 소리쳤다. 그는 조그마한 외신(外信) 텔레타이프실의 책상 구석에 숨어 있었다.

그는 와들와들 떨었다. “공비(共匪)가 나타난 줄 알고…”라며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나는 그의 어깨를 두드려 안심시켰다. 6개 공약이 들어 있는 혁명취지문을 주었다. 박종세는 ‘혁명’이라는 글자에 흠칫 놀랐다. 나는 그에게 방송 요령을 주문했다. “‘오늘은 국민 여러분께 중대한 발표를 해드리겠습니다’란 말을 먼저 한 뒤 차분하게 읽어 달라”고 했다. 도망쳤던 기술요원들도 공수부대원들이 찾아 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