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도영이 쐈어, 이럴 수 있나” 총알 뚫고 온 박정희의 분노 (11)

  • 카드 발행 일시2023.08.07

그날은 JP 인생에서 가장 긴 하루였다. 1961년 5월 16일의 거병은 비밀누설 속에 시작됐다. 출발은 불길했다. 그렇다고 되돌릴 수는 없다. 화살은 활시위를 떠났다. 긴장과 불안, 긴박감과 안도감이 팽팽하게 충돌하면서 시간은 흘러갔다. 그 하루는 역사를 새로 쓰는 날이었다.

1961년 5월 20일 청와대 본관에서 윤보선 대통령을 면담하고 나오는 박정희 소장(오른쪽 둘째)과 장도영 육군 참모총장(중장·왼쪽). 박 소장이 윤 대통령을 만나러 들어갈 때 벗어놨던 권총을 박종규 경호대장(오른쪽)이 들고 있다. 장 총장 오른쪽은 참모총장 비서실장인 안용학 대령이다. 중앙포토

1961년 5월 20일 청와대 본관에서 윤보선 대통령을 면담하고 나오는 박정희 소장(오른쪽 둘째)과 장도영 육군 참모총장(중장·왼쪽). 박 소장이 윤 대통령을 만나러 들어갈 때 벗어놨던 권총을 박종규 경호대장(오른쪽)이 들고 있다. 장 총장 오른쪽은 참모총장 비서실장인 안용학 대령이다. 중앙포토

5월 15일 밤 11시30분. 우리는 신당동의 박정희 소장 집을 떠났다. 박 소장의 지프 뒤칸엔 한웅진(육군정보학교장) 준장과 내가 동승했다. 장경순(육본 교육처장) 준장의 차가 따라왔다. 목적지는 영등포구 문래동의 6관구 사령부. 혁명 제1지휘소다. 6관구는 수도권 일대를 관할한다. 그 때문에 서울을 장악하려는 혁명 부대를 지휘하기에 적격이다. 박 소장이 6관구에 도착해 작전 명령을 내림으로써 5·16 궐기는 시작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