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3799)재입교 좌절-제79화 육사졸업생들(252)

    6.25가 터진 후 친형처럼 돌봐주며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생도1기생들이 7월10일 대전 원동국민학교에서 소위로 임관돼 훌쩍 떠난 뒤 생도2기생들도 곧 열차편으로 대구로 이송됐다.

    중앙일보

    1983.08.25 00:00

  • (3798)|(251)|첫 면회날

    생도생활의 마지막날이 되고만 24일밤 생도들은 설렘 속에 거의가 밤잠을 설쳤다. 6월의 넷째 일요일이었던 25일은 입교 후 처음으로 허용된 면회날이었기 때문이다. 이날의 북괴 남침

    중앙일보

    1983.08.24 00:00

  • (3797)제79화 육사졸업생들(250)|짧았던 생도생활

    1일에 치른 소양시험결과는 3일에 발표됐고 그 하루 뒤인 4일 소양시험에서 탈락된 l백19명이 경기도시흥의 보병학교로 보내졌다. 탈락자들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육사를 떠나고 난다

    중앙일보

    1983.08.23 00:00

  • (3796)제79화 육사졸업생들(249)|생도2기

    생도2기를 일컬어 흔히 「비운의 기」, 심지어는 「죽음의 기」라고 부른다. 나 역시 육사를 거쳐간 많은 기가운데 가장 불행했던 기를 꼽으라면 서슴없이 생도2기를 든다. 28대1이라

    중앙일보

    1983.08.22 00:00

  • (3795)제79화 육사졸업생들(248)|10기생의 현주소

    6·25와 월남전등 두번의 전쟁을 치른 10기생들은 사회생활에서도 한치의 어김없이 「지휘관」또는 「참모」로서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소위때부터 계속 야전군에 몸 담아왔던

    중앙일보

    1983.08.20 00:00

  • (3794) 제79화 육사졸업생들(247) 10기생의 현주소(1)

    10기생과 월남전 이야기를 하다가 국군파병 전모에 대해 언급했었다. 다시 10기생 이야기를 마무리짓기로 하겠다. 3백12명의 10기생중 현재 생존해있는 사람은 모두 1백68명이며

    중앙일보

    1983.08.19 00:00

  • (3793) 제79화 육사졸업생들(246)|월남철수

    65년 미국이 월남전에의 적극개입을 선언하면서「존슨」대통령은「웨스트모얼랜드」주월미군사령관의 3단계「수색섬멸작전」계획을 받아들였었다. 「웨스티」의 수색섬멸작전은 미국 및 자유우방이

    중앙일보

    1983.08.18 00:00

  • (3790)제79화 육사졸업생들(243)

    맹호가 주둔한 퀴논은 말연항으로 월남 제2의 군항이었다. 동쪽은 남지나해이고 서남쪽은 정글지대에 접한 광활한 분지였다. 맹호는 퀴논에 상륙 한지 1개윌여 계속 중대단위의 진지구축

    중앙일보

    1983.08.15 00:00

  • 제79화 육사졸업생들|진중일기

    월남전 이야기를 연재하는 동안 청룡부대 1진으로 파월됐던 오륜진중령(해병간부7기·소장예편)은 2년동안 월남에서 적은 진중일기를 보내주었다. 정말 좋은 자료였다. 그의 일기 몇 토막

    중앙일보

    1983.08.13 00:00

  • 《3788》제79화 육사졸업생들(241) 장창국

    청용부대는 65년10월2일 l8륜의 특별열차로 포항에서 부산으로 이동, 제3부두에 정박해 있던 미해군수송선 가이거호와 엘틴저호에 탑승했다. 10월3일상오9시 청용이 떠나는 부두에는

    중앙일보

    1983.08.12 00:00

  • (3787) 제79화 육사졸업생들(240) 파월부대 결단

    부대편성을 끝낸 맹호와 청룡은 1개월 남짓 정글전에 대비한 고도의 엄격한 훈련을 쌓았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수도사단은 당시 야전군의 전력평가에서 최고점을 받았던「최정예부대」였고,

    중앙일보

    1983.08.11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제79화 육사졸업생들(239)파월준비

    비둘기부대 파병때도 그랬지만 3차 전투부대 파병때도 국회에서 파병동의안이 통과되기 전에 우리는 파병준비를 거의 끝내놓고 있었다. 국방부와 합참은 65년6월26일과 28일 두차례에

    중앙일보

    1983.08.10 00:00

  • 제79화 육사졸업생들(238)작전지휘권 문제

    전투부대 파병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후 당시 합참전략정보국장으로 있던 이세호소장(육사2기·대장예편·전 육군참모총장)을 단장으로 하는 3차실무 연락단이 8월19일 사이공에 도착했다

    중앙일보

    1983.08.09 00:00

  • (3784)제79화 육사졸업생들(237)장창국|파월동의안 국회처리

    정부는 65년7월2일 국무회의에서 증강된 l개전투사단을 월남에 파병하기로 의결하고 당시 정부대변인이었던 홍종철공보부장관을 통해 이를 공식 발표했다. 전투사단 파병 동의안은 7월12

    중앙일보

    1983.08.08 00:00

  • 제79화 육사졸업생들대통령 방미

    박정희대통령은 65년5월16일 「존슨」대통령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박대통령은 61년11월 당시 최고회의의장시절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한데 이어 63년11월에는 「케네디」대통령

    중앙일보

    1983.08.06 00:00

  • 제79화 육사졸업생들(235)3차파월

    비둘기부대가 파월된지 2개월후인 65년6월 월남정부는 한국군 전투부대의 파견을 요청해 왔다. 정부가 월남수상 「판·후이·콰트」씨로부터 전투부대의 파견을 호소하는 공식서한을 접수한

    중앙일보

    1983.08.05 00:00

  • (3781)제79화 육사졸업생들(23)>건설사업

    주월 한국군의 「첫 교전」으로 기록되는 베트콩의 기습을 비둘기부대장병들이 격퇴시킨것은 전과로서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지만 전장병에게 베트콩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해주었다고 한다.

    중앙일보

    1983.08.04 00:00

  • (3780)제79화 육사졸업생들(233)베트콩의 첫 공격

    65년4월1일 비둘기부대는 월남땅에 첫 「건설의 삽」을 꽂았다. 디안 군청소재지에서 비둘기부대병 병영까지 2.5㎞에 이르는 자갈길을 확장, 포장하는 공사를 벌이게 된 것이다. 기공

    중앙일보

    1983.08.03 00:00

  • 제79화 육사졸업생들(232)현지반응

    『한국정부의 파병에 대하여 깊은 사의를 표한다』, 『한월 친선 만세』 -. 비둘기부대를 맞는 사이공의 표정은 열광적이기 보다는 차분했다고 한다. 한두개 정도 환영아치가 서 있을줄

    중앙일보

    1983.08.02 00:00

  • (3778) 제79화 육사졸업생들(231) 사이공 도착

    비둘기부대 주력병력은 3월10일 정오쯤 미해군수송함 제너럴 맨호에 탑승을 완료했다. 인천부두에서 베풀어친 환승식에서 받은 꽃다발을 바닷물속에 던지면서 제너럴 맨호에 승함하는 장병들

    중앙일보

    1983.08.01 00:00

  • 남기고싶은 이야기들(3777) 제79화 육사졸업생들(230) 비둘기부대 환송

    65년2월9일 하오3시 월남파견장병(비둘기부대) 환송 국민대회 (대회장 최두선 대한적십자사총재)가 서울운동장에서 성대히 베풀어졌다. 운동장에는 조문환준장을 선두로 장교 1백20명,

    중앙일보

    1983.07.30 00:00

  • (3775)제79화 육사졸업생들(228)비둘기부대|장창국

    제2차 파월부대를 통상 「비둘기부대」라고 말하지만 공식명칭은 주월한국군사원조단(ROKMAClV)이었다. 64년말 2차파병이 결정된후 육군본부는 파병작업을 비밀리에 진행시키면서 평화

    중앙일보

    1983.07.28 00:00

  • 제79화 육사졸업생들(227)|주둔지결정

    한 미군 실무회의에서 「웨스트모열랜드」장군은 한국군 2차 파평부대의 주둔지를 사이공에서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뻗어있는 1번 국도상에 잡아주도록 요청했다고 한다. 「웨스티」는 64

    중앙일보

    1983.07.27 00:00

  • 제79화육사졸업생들2파 파월선발대

    2차 파월부대의 선발대 (단장 이동섭준장) 7명은 65년1월8일 미 군용기 편으로 김포를 떠났다. 선발대중 이단장과 김영일대령은 실무회의를 마치고 바로 귀국했지만 김영린소령·안창화

    중앙일보

    1983.07.26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