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박 대통령 시정연설

    한미 공동방위체제를 계속 견지하고 주한 미 지상군의 단계적 철수문제와 관련하여 지난 7월 한미양국 정부간에 합의된 외교·군사양면의 보완조치가 차질 없이 실천되도록 하는 동시에 우

    중앙일보

    1977.10.04 00:00

  • 박 대통령 시정연설 요지

    우리는 이제 그동안 쌓아 올린 성과와 경험과 자신을 토대로 하여 내년부터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출범시키게 되었다. 이 계획이 끝나면 1981년에 가면 우리 경제규모는 크게

    중앙일보

    1976.10.04 00:00

  • 소, 북괴 원조를 확대

    소련은 8일 「조·소 우호 협조 및 호상 원조 조약」 (군사 동맹 조약) 체결 15돌 (7월6일)을 맞아 지난 61년 이후 북괴에 제공한 경제·기술 원조 내용을 열거, 생색을 내는

    중앙일보

    1976.07.10 00:00

  • 「조력자원개발」간담회

    「오일·쇼크」이후 각광을 받고있는 조력자원개발에 관한 간담회가 3일 이종찬 전 「코리어·엔지니어링」사장과 홍성수 조력자원개발연구소 연구원의 주최로 세종「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간

    중앙일보

    1976.03.04 00:00

  • 풍성한 질문에 쏟아진 문제점|국회예산심의…하일라이트 중계

    올해 예산안심의에서는 질문도·문제점도 풍성하게 쏟아져 나왔다. 야당이 한해를 걸러 참여해서인지 신민당 의원은 전원 질의에 나섰고 1인 5, 6회까지 연속질의를 한 의원들도 허다하다

    중앙일보

    1975.11.15 00:00

  • 박 대통령 새해 시정연설 요지

    나는 지난 30년 동안 그 많은 시련과 고난을 이겨낸 우리 국민들의 강인한 의지와 단결력, 그리고 오늘의 발전과 성장을 이룩한 빛나는 슬기와 무한한 저력이 있는 한 머지않아 이 땅

    중앙일보

    1975.10.04 00:00

  • 년 20억불 지원 보장|남 기획원장관 귀국 보고

    남덕우 경제기획원장관은 IECOK(대한경제협의체)로부터 매년 20억「달러」의 외자지원을 얻는데 대해 긍정적 보장을 얻은 것을 비롯, 서독·「프랑스」·화란·「벨기에」 등 구주 4개국

    중앙일보

    1975.07.12 00:00

  • 거북선의 조선학적 복원|김재근 교수 (서울대공대) 발표·논문

    서울대공대의 조선학계권위인 김재근 교수는 이제까지 복원한 거북선 귀선의 구조와 크기 및 선형에 대해 일부 수정 해명하는 논문을 발표 ,아산현충사와 기타 지역에 비치한 모형들을 고쳐

    중앙일보

    1974.06.01 00:00

  • (17)조선혁명군정부|이명영 집필(성대교수 정치학)

    조선혁명군의 양세봉 총사령이 전사하자 그 후임으로 총사령에 오른 사람이 김활석(본명 문빈·또 하나의 별명 문무경)이다. 양세봉이 총사령으로 있을 때까지는 조선혁명당을 지도기관으로

    중앙일보

    1974.05.06 00:00

  • 박대통령 연두회견 요지

    ▲북한의 평화협정 주장에 대해=평화협정이라는 말이 처음 나은 것은 71년8월 미국「뉴요크·타임스」지의 기자가 중공을 방문, 주은내를 만났을 때 주가 끄집어 낸 얘기다. 그후 북한은

    중앙일보

    1974.01.18 00:00

  • 「아시아」의 두 거인 일본과 중공|대결이냐 협력이냐 데레크·데이비스(파 이스턴·이커노믹·리뷰지편집장)테레크·데이비스

    중공의 대외관계를 운위할매 흔히『중원「콤플렉스」』를 거론하는 사람이 많다. 이들에 따르면 모든 외국을 조공국으로 인식하는 중국인의 전통적 사고방식은 현 중공지도자들의 경우에도 예외

    중앙일보

    1974.01.16 00:00

  • (10)-지원 시설

    중화학 공업단지는 자연적인 입지조건이 좋아야 한다. 육·해운 등 교통이 편리해야 하며 주위에 풍부한 수자원을 갖고 있어야 하고 또 배후지에 동원 가능한 충분한 노동력을 확보하고 있

    중앙일보

    1973.08.27 00:00

  • (428)지원작전⑭|병기(2)

    총은 군인의 제2 생명이며 전장의 소중한 「애인」이다. 그러기에 육군병기학교장 장희준 소령은 6월말 수원비행장에 공수돼온 탄약의 운반집적을 진두 지휘하면서 마지막 한정의 기관총을

    중앙일보

    1973.02.23 00:00

  • (415)군수보급(1)|지원작전(1)

    화력·기동력·통신은 현대 국지전의 승패를 판가름하는 3대요소라고 볼 수 있겠다. 병기·탄약 등의 화력과 수송·유류·정비 등의 기동력, 유무선의 통신은 모두가 군수보급기능에 속하는

    중앙일보

    1973.01.18 00:00

  • 새로운 도전속 세계의 기업(3)|동서 경제 교류의 확대 (하)

    현재 서구에는 『붉은 「세일즈맨」』의 활동이 눈부시게 전개되고 있다. 1848년 「카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유럽」에 공산주의라는 요괴가 배회하고 있다』고 말했으나 지

    중앙일보

    1972.11.10 00:00

  • (295)휴전회담의 개막(9)|한국의 입장(4)

    휴전회담개최와 함께 국군수뇌들이 처한 난처한 입장과 고민을 관계 지휘관들로부터 더 들어보겠다. 이 증언에서 이때까지 묻혀있던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고 아울러 작금의 사태발전

    중앙일보

    1972.02.28 00:00

  • (358)-제자는 필자|발명학회(12)

    새로 단일화한 과학보급협회는 한동안 뒤에 회장 윤치호씨 부회장 원익상씨, 그리고 상무이사인 나의 3인체제로 이끌어 나갔다. 전무이사였던 김용관씨와 상무이사였던 김희명씨는 협회를

    중앙일보

    1972.01.17 00:00

  • (335)발명학회|목돈상

    발명은 태평양 건너에서나 하는 줄 알았던 우리민족이 차츰 발명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세종대왕·이 충무공 등 선조들의 탁월한 발명 소질이 민족의 혈통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

    중앙일보

    1972.01.13 00:00

  • (190)38선 돌파와 북진(6)

    (3) 미 제1기병사단이 적2개 사단을 포위한 금 천 지역의 섬멸전은 10월13일부터 절정에 이르렀다. 특히 두 석 산을 정면으로 공격한 미 제8기병 연대는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중앙일보

    1971.06.18 00:00

  • (179)시가전(하)

    9월27일 하오까지 국군과 미군은 서울시를 거의 탈환했다. 동북교외에서는 아직 산발적인 소탕전이 계속됐지만 서울시에서의 적의 조직적인 저항은 27일 하오를 기해 끝났다. 불타지 않

    중앙일보

    1971.05.24 00:00

  • (176)연희고지 전투|「6·25」20주…3천여의 증인회견 내외 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한국전쟁 3년

    (1) 9월20일 새벽에 행주에서 한강을 건넌 미 제산 군단 산하 제1해명사단 5연대와 한국군 해병대는 이대로 진격이 순조로우면 22일께면 서울을 완전히 수복하리라고 예상했다. 「

    중앙일보

    1971.05.17 00:00

  • (168)「6·25」20주… 3천 여의 증인회견·내외 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한국전쟁 3년|인천 상륙(11)|행주 도하

    인천 상륙 후 파죽지세로 진격을 계속하여 김포 비행장을 점령한 미 제1해병사단 제5연대와 우리 해병대는 20일 행주 도하에서 비로소 적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쳤다. 이 행주 나루터

    중앙일보

    1971.04.28 00:00

  • 차관도입부진

    대일상업차관인가액이 6월말 현재1백28건5억7천9백만불에 말했으나 이중50%가까운 2억7천7백 만불은 지급보증(LG)이 발급되지 않았거나 일본측의 윤출허가(EL)를 받지못하고 있다

    중앙일보

    1969.07.26 00:00

  • 해상게릴라전을 선제하라|대형함정으로 북괴소형쾌속정소탕은 벼룩 잡는데 도끼격|적 앞지를 PGM 도입해야

    북괴의 해상침투에 대처하기 위해 소형쾌속정에 의한 해상방위강화가 시급히 요청되고 있다. 해군의 전술담당자는 북괴가 소형쾌속정으로 무장간첩을 침투시켜 「해상게릴라」전을시도하면 우리도

    중앙일보

    1969.06.17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