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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1. 샛강
▶ 인텔리인 막내 이모부가 월남 도와줘 넷째 이모는 신혼이었다. 남편은 일본에서 법학을 전공했던 젊은 '주의자'였다. 그는 학병 통지가 날아오자 일단 평양으로 왔다가 만주로 달아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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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죄 아닌 죄
'1943년 11월 9일 오후 6시30분 경성(京城)의 부민관(서울시 의회 의사당)에서 '학병 권유를 위한 군인선배 강연회'가 열렸다. 가네야마(金山錫源) 중좌(중령)가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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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역사] 66. 구름을 타고
▶ 1960년대 필자의 모습 비행기가 하얀 구름 위를 날아가다 새파란 바다 위로 나섰다. 현해탄이다. 뭉클 치솟는 감개를 어찌하랴. 그 옛날 연락선을 타고 저 바다를 오가며 그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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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역사] 64. 구름을 타고
▶ TV드라마‘아로운’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젊은 시절의 송재호씨. 1968년 초였던가. KBS-TV의 이용상 국장이 나를 불렀다. '현해탄은 알고 있다' 등 '아로운전' 3부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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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역사] 50. 빛의 소리
▶ 국방부 주최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두고 온 산하’로 당선된 신봉승씨. 기억이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는구나. 나도 꽤 늙었나 보다.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난 지 반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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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역사] 30. 대비극
▶ 한국전쟁 때 인해전술을 펼치고 있는 중공군들. 인천상륙작전의 포소리가 뻥뻥 울리고 인민군이 자취를 감췄을 때 내가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은 재동에 있는 정순택의 집이었다. 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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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역사] 26. 대비극
▶ 1993년 다방에서 만난 정순택(右)씨와 필자. 정순택(鄭舜澤). 삼청동 꼭대기에 살고 있었다. 처자를 데리고 북으로 넘어갔을 때는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났다. 그가 이번에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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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역사] 17. 청춘
▶육민관을 세운 홍범희 선생. 이렇게 시작된 육민관과의 인연은 이후 많은 의미를 갖게 됐다. 홍범희 선생은 농촌 사람들의 우상이 되었다. 논 팔고 소 팔아 자식만은 공부시키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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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통과 주요 법안 요지] 친일반민족 진상규명委 설치
국회는 2일 본회의를 열어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에 따르면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한 자료수집 및 조사보고서를 작성하고 사료를 편찬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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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민족행위 특별법 '부활'
국회 법사위는 26일 전체회의를 열고 '일제 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안'(반민족행위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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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역사] 4. 일본과 나
1944년 1월 20일. 조선학도특별지원병들은 일본 각지에서 입대했다. 나는 나고야 13 부대였다. 수송연대다. 나는 자동차 중대로 편입됐다. 초년병 시대의 기기묘묘한 희비극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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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교양] '대한민국史'
대한민국史/한홍구, 한겨레신문사, 1만1천원 '유연한 사고를 지닌 저자의 심지(心志)굳은 역사서'. 책을 완독하고 가장 먼저 떠오른 느낌이다. 역사에서 객관적인 서술이란 있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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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음
▶崔仁淑씨(원주성애원장)별세, 元智永(서울신학대 교수)·明福(전 성문중 교사)·明順씨(서울시보육시설연합회장)모친상, 李倧鏞씨(이화여고 교목)·朴判俊(육군 대령)·趙炳煜(외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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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손시헌옹 별세
애국지사 손시헌(孫時憲)씨가 19일 오전 7시50분 부산보훈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80세. 고인은 1942년 7월 일본 도쿄(東京)에서 유학하던 중 '조선독립청년단'을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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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남북시대에 가보는 6·25 전적지]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는 통일에 대한 열기가 초여름 무더위만큼이나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특히 이번 회담에서 전쟁을 지양하고 평화통일을 이룩하자는 합의가 이뤄져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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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광장] '제3의 사상' 外
◇ 제3의 사상(심백강 지음.청년사.8천원)〓신자유주의와 제3의 길을 뛰어넘어 21세기 인류가 지향해야 할 대안적인 사상을 모색한다. 저자는 동양사상의 도덕을 몸통으로, 자본주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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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0세기' 체험기록 공모 시상식
중앙일보가 제2창사 특별기획으로 한국정신문화연구원과 공동 주관한 '나의 20세기' 체험기록 공모 시상식이 12일 오후 3시 본사 로비 1층 세미나홀에서 열렸다. 이날 시상식에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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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오프 더 레코드 (17)
(17) 송도中 무기고 탈취 해방이 되던 해인 1945년 나는 송도중학교 6학년으로 졸업반이었다. 말썽꾸러기 아들을 객지에 둔 부모님은 '물 가의 갓 난 아기' 처럼 걱정이 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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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아니면 '아니오' 해야지 (38)
(38) 육본회의 내가 용산 육군본부에 도착한 것은 16일 오후 2시쯤. 나는 참모총장실로 직행했다. 장도영 총장과 박정희 장군이 앉아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단도직입적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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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아니면 '아니오' 해야지 (30)
(30) 4.19의 확산 나중 얘기이긴 하지만 이기붕의장 일가가 19일 6군단을 다녀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나는 미처 생각지도 못한 구설수에 휘말리게 됐다. 우선 국회에서 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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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아니면 '아니오' 해야지 (28)
(28) '4.19'와 군 출동 "따르릉" .1960년 4월19일 오후 3시가 막 지났을 무렵 6군단장실 전화 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김종오 (金鍾五) 육군참모차장이었다. 그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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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아니면 '아니오' 해야지 (18)
(18) 創軍 구성 갈등 1945년 8월 해방 이후 시작된 창군 (創軍) 과정에서 미군정청이 가장 곤란을 느낀 것은 군수뇌부 구성 문제였다. 당장 군대는 만들어야겠는데 19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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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아니면, '아니오' 해야지(15)
(15) 다시 南으로 1946월 3월 나는 원산에서 친구 5명과 함께 속초로 가는 통통배를 탔다. 나와 동행한 심돈섭 (沈惇燮).김화선 (金化善).강승걸 (姜承傑).강명경 (姜明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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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아니면 '아니오'해야지 (13)
(13) '17년 軍門' 첫 발 1944년1월 나는 봉천에 있는 관동군 독립보병 제138부대에 학병 (學兵) 으로 입대했다. 그러고 보면 모를 것이 사람의 운명인 것 같다. 그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