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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88. 내 자랑
필자는 '영원한 디자이너'로 불리기를 바란다. 'HEREN' 지난해 11월호에 실렸던 이 사진은 사진작가 채우룡씨가 찍었다. 내년이면 나는 만 80세가 된다. 나는 20세에 미국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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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87. 한국 패션 반세기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우리나라에 서양 복식, 즉 패션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직업 댄서로 일하던 여성들이 서울로 돌아오면서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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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85. 우먼 파워
반세기 넘게 패션 디자이너로 살아오면서 옷을 통해 멋지고 자랑스러운 여성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 나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그 분들이 노라 노의 옷을 즐겨 입은 덕분에 내가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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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84. 세계패션그룹 대상
2000년 패션그룹 대상 시상식이 열린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후배들과 함께 기념촬영했다. 필자(왼쪽에서 다섯번째)의 오른쪽은 함께 수상한 서울대 이인호 명예교수. 내가 패션에 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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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83. 미 브라운대 강연
2000년 봄 미국 브라운대에서 연 '직업 전선에의 여성'이란 주제의 워크숍에서 필자가 이 대학 무대의상학과 학생들과 얘기하고 있다. 2000년 봄 미국 브라운대 초청으로 나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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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82. "MBA와 결혼을"
필자(왼쪽에서 둘째)가 경기여고 후배인 진경희(왼쪽에서 셋째)와 함께 1999년 로드 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RISD)의 교정에서 찍은 사진. 미국 동부 로드 아일랜드주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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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81. 대통령 부인들
1998년 김대중씨가 제15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부인 이희호 여사는 가끔 우리 옷을 사 입었기 때문에 나와 친분이 있었다. 청와대로 들어간 이 여사가 옷이 마땅치 않아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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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79. 마지막 용기
서울 청담동 사무실에서 디자인 스케치를 하고 있는 필자의 모습이 1997년 한 잡지에 인터뷰 기사와 함께 실렸다. 1990년 일본에 '노라 노 재팬' 법인을 설립한 지 7년이 흘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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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77. 굿바이, 뉴욕
1980년대 말 미국의 패션 전문 일간지인 WWD에 실었던 노라 노의 광고. 실크로 만든 원피스형 점프 수트이다. 1992년 우리나라 근로자 764만 명 중 여성 비율은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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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76. 이북 친구 여연구
어린 시절 친구였던 여연구 전 북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1991년 서울에서 열린 남북여성대회에 북한 대표로 여연구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이 왔다. 그녀는 일제 때 독립운동가인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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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75. 청담동
1991년 서울 청담동 사옥 지하의 패션쇼장에서 겨울 패션쇼를 열었다. 모델은 고객 중에서 뽑은 주부들이었다. 1990년 초가을 나는 강남의 청담동으로 사옥을 이전했다. 40년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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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74. 노라 노 재팬
1992년 일본 오이소 프린스 호텔에서 바이어를 초청해 패션쇼를 열었다. 나는 1980년대 초반부터 파리 진출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 일을 진행하기 위해 경영학석사(MBA) 출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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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72. 유일한 사치
환갑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TV 외화 시리즈 '러브 보트'를 보면서 생일 파티를 선상에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40년 가까이 쉬지 않고 일만 하고 살아왔으니 6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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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70. 보그와 바자
1987년 패션잡지 바자 미국판에 실렸던 광고. 이 옷은 직장과 파티에서 모두 입을 수 있는 원피스로 히트작 가운데 하나다. 보그(Vogue)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패션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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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69. 히트작
1985년 패션잡지 보그(VOGUE) 미국판에 실었던 광고. 모델이 입고 있는 옷은 노라 노의 히트작으로 블라우스형 재킷이다. KBS가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을 시작해 온 국민을 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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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66. 쇼윈도
미국 뉴욕의 메이시 백화점 1층에 있는 쇼윈도 15개가 모두 내가 디자인한 옷으로 채워졌다. 1979년 미국 뉴욕 맨해튼 7번가의 패션가에 '노라 노' 간판을 걸고 쇼룸을 열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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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64. 운명의 실크
1974년 미국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의 패션쇼를 마친 뒤 칵테일 파티에 참석한 필자(中). 미국 뉴욕에서 노라 노의 실크 패션쇼가 열렸다. 뉴욕 일류 모델들이 실크 옷을 휘날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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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63. 운명의 실크
1974년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플라자 호텔에서 바이어들을 대상으로 연 패션쇼. 미국인 모델이 입고 있는 핑크색 실크 드레스에 프린트된 나비 문양은 신사임당의 그림에서 영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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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62. 기성복 코너
1971년 2월 26일자 중앙일보 5면에 실린 '대중에 정착한 구미 패션'이란 제목의 기사. 필자가 파리의 패션 경향을 소개한 글이다. 어느 날 오후 신세계백화점 사장이 우리 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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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61. 미국 시장 뚫다
1980년대 초 미국의 패션 전문 일간지 WWD에 실었던 필자의 옷 광고. 당시 유행하던 뉴 로맨티시즘을 표현했다. 미국 뉴욕 삭스(Saks) 백화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옷을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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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60. 누에고치의 감동
1973년 파리에서 열린 기성복 패션쇼의 전시회장에 마련된 노라 노 의상 전시 부스. 외국인 모델들이 내가 디자인한 옷을 입고 서 있다. 1973년 나는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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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59. 코코 샤넬
1937년 자신이 살고 있던 프랑스 파리의 리츠 호텔에서 포즈를 취한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사진=샤넬] 1971년 세계적인 디자이너 코코 가브리엘 샤넬 여사가 88세로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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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58. 목화 아가씨
1969년 서울 창경원(현 창경궁) 수정궁에서 열린 패션쇼에서 그해 미국 목화 아가씨로 뽑힌 케이티 머헤드가 한복 모델로 나섰다. 미국은 매년 '목화 아가씨(Miss Cot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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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57. 가수 의상 제작
1967년 가수 윤복희씨가 필자 작품인 초미니 스커트를 입고 무대에서 공연하는 뒷모습. 그가 부른 '웃는 얼굴 다정해도'라는 노래와 어울리게 디자인했다. 기성복 생산을 시작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