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87. 한국 패션 반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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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56년 내가 연 첫 번째 패션쇼를 계기로 우리나라 패션은 제 길로 들어섰다고 말할 수 있다. 매년 두 차례씩 패션쇼를 열어 세계적 패션의 흐름을 보여주었으며, 여러 매체를 통해 홍보를 하기도 했다. 광복 후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패션은 서서히 일반화돼갔다. 당시 직장 여성들 사이에서는 '옷 계'가 유행이었다. 그들은 조금씩 모아 마련한 목돈으로 멋진 겨울 코트 한 벌을 장만하기도 했다.

60년대에는 주로 영화의 주인공 의상들이 패션을 이끌었다. 56년 TV방송 개막으로 시작된 탤런트.가수들의 의상을 통한 패션 홍보가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였다. 67년 열린 기성복 쇼는 패션 대중화의 본격 신호탄이 됐다.

7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사치로 여겨지던 패션이 여성에게 꼭 필요한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74년 신세계 백화점에 노라 노 기성복 코너가 신설됐다. 이때 젊은 디자이너들이 패션계에 많이 진출했다. 79년 롯데백화점 개점으로 기성복 시장이 활짝 열렸다. 같은 때 서울 명동에 개점한 반도패션(현 LG패션)이 더욱 대중적인 의류를 내놓아 일반 여성에게 옷을 입는 재미와 기쁨을 안겨주었다.

80년대에는 우리나라 섬유.의류 수출업이 성수기를 맞았다. 해외에 주문자생산방식(OEM)으로 수출되는 미국 디자이너들의 제품이 불법으로 국내시장에 흘러들어와 '이태원 패션'을 만들기도 했다.

92년 '엘르', 95년 '보그''바자' 등 해외 유명 패션잡지의 한국판이 발간됐다.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에게 국제적 패션 감각을 높여주고, 일반인에게는 패션에 대한 관심을 키워주는 역할을 했다.

90년대 말에는 '동대문 밀리오레 패션'이 떠오르면서 우리나라 젊은이뿐만 아니라 일본.중국과 동남아 국가의 바이어들이 몰려와 한국의 대중 패션은 자연스럽게 국제성을 띄게 됐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패션계는 세계적으로 활기를 잃어갔다. 젊은이들이 스포츠.여행 그리고 컴퓨터의 매력에 푹 빠져 패션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보다 옷을 어떻게 벗어야(노출해야) 하는지에 더 신경 쓰는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원시적이고 지나치게 감각적으로 변질되는 듯했다. 이것이 현대인의 감각이라고 본다면 미래의 패션은 어디로 갈 것인가? 아마도 두 가지 극단, 즉 실용적인 것과 조형적인 것으로 분리되어 진화할 게다.

노라·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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