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70. 보그와 바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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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987년 패션잡지 바자 미국판에 실렸던 광고. 이 옷은 직장과 파티에서 모두 입을 수 있는 원피스로 히트작 가운데 하나다.

보그(Vogue)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패션잡지 중 하나다. 신인 디자이너이나 모델들이 보그에 실리면서 유명세를 타 거물급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1985년 미국판 보그 5월호에 노라노의 디자인이 실렸다. 미국의 패션 전문 일간 신문인 우먼즈 웨어 데일리(Woman's Wear Daily)에는 노라노의 기사와 광고가 자주 실렸지만 미국판 보그에 노라노의 옷을 입은 모델 모습이 한 페이지 전체에 실리기는 처음이다.

보그의 위력은 대단했다. 사진이 실렸던 5월에 주문이 쇄도하면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잡지에 실렸던 스타일 넘버 6014는 프린트 원단으로 된 오버 재킷에 단색 팬츠를 한 벌로 만든 것이다. 재킷은 빨강색 바탕에 검정색으로 프린트를 찍고 약간의 금분을 발라서 프린트를 한층 더 고급스럽게 업그레이드 했다. 소매는 기모노 슬리브에 단추를 달지 않고 대신 앞을 둥글려 길게 늘어뜨려 입도록 한 이브닝 웨어다. 게다가 6014 스타일은 '프리(free) 사이즈'라 몸매에 구애를 받지 않았다. 나는 잡지에 실린 사진을 보고 또 보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회에 젖었다.

87년에는 스타일 넘버 7075 원피스가, 또 다른 수준 있는 패션 잡지인 미국판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에 실렸다. 이 디자인은 보다 더 대중적이서 6014보다 많이 팔려 나갔다.

유명세를 탈수록 노라노 디자인에 대한 카피는 심하게 번져나갔다. 홍콩의 어느 봉제 회사 샘플실에는 노라노의 샘플 두서너 벌이 걸려 있을 정도였다. 미국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블루밍데일즈 백화점 매장을 돌게 되면 세 발짝이 멀다하고 노라노의 카피가 눈에 띄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띈 카피는 뒤 허리를 고무줄로 처리 한 것이었다.

한번은 우리 회사 세일즈맨인 미스터 헐만이 내게 흥분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매년 로스앤젤레스 노르드스트롬 백화점에서 모든 납품업자들을 초청해서 갖는 친목회가 있는데 그곳에서 다음과 같은 연설을 공개적으로 들었다는 것이다.

"여러분, 노라노 브랜드는 우리 백화점 전 매장에서 판매 1위를 차지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납품 일정을 단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으며, 상품의 품질에 전혀 문제가 없는 것으로도 1위입니다." 세일즈맨 헐만은 그날 모인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다고 했다.

모든 업종에서 납품 기일을 지키는 것은 기본이지만 결코 쉽지는 않은 일이다. 나는 퇴계로에서 처음 영업을 시작하면서 이것만큼은 꼭 지키려고 애썼다. 손님과의 약속 날짜를 맞추기 위해 이중, 삼중으로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대체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약속 시간에 대한 책임감이 둔한 편인데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노라·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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