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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28) 천재 전략가의 귀국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 유엔군 총사령관 직에서 해임된 뒤 일본 도쿄에서 미국으로 돌아간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1951년 4월 19일 미 의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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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의소프트파워] '오늘의 인천 상륙작전'을 감행하라 !
56년 전 오늘(16일) 낙동강 전선에서는 국군과 유엔군의 총반격이 개시되었다. 그것은 바로 전날인 1950년 9월 15일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가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고 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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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공사 선정 '6월에 가볼만한 곳'
한국관광공사가 6월에 가볼 만한 곳으로 선정한 4곳을 소개한다. 한국전쟁의 격전지였던 경북 칠곡군, 계곡.호수.휴양림을 모두 맛볼 수 있는 강원도 횡성, 충남의 알프스로 통하는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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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자 사전운동 물의/민주계 곤혹 민주당 쾌재
◎“요란한 빈수레”/민주당 공세/“청와대 궁지로 몰아 정국주도권 잡자”/무능·무례·무철학 공격 ○…민주당 인사들은 민자당 민주계의 잇따른 실책과 구설수가 바로 민주계의 한계라고 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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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바레인과 무승부 1-1
제25회 아시아청소년(19세이하) 축구선수권대회에 출전중인 한국팀은 2일밤(한국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말라즈구장에서 벌어진 B조예선 첫경기에서 바레인과 1-1로 비겼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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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 축구 포클랜드전 이겼다.
【멕시코시티·푸에블라·과달라하라·몬테레이=외신종합】「축구 포클랜드전쟁」에서는 아르헨티나가 이겼으며 세계축구의 최강 브라질은 프랑스에 끝내 덜미를 잡혔다. 23일 상오3시(한국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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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이승만대통령
대통령의 참외선물을 받은 만송의 두아들 강석·강욱은 고맙다는 인사를 왔다가 대통령의 말동무가 되었다. 대통령은 두형제를보자 『요놈들, 이 할아버지하고 팔씨름 시합할래?』 하고는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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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3)제79화 육사졸업생들
9기생과 6·25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9·28수복 당일 중앙청에 맨 먼저 태극기를 다시올린 해병박정모소위 (56·대령예편·현신아조선대표)외 무용담이다. 박소위는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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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군, 총반격 작전
【베이루트·바그다드 10일 AP합동】「이란」군은 10일 「이라크」군이 진주한 「호람샤르」항과 「아바단」 「아와즈」 등 「이란」내 최대 격전지에서 대대적인 반격 작전을 개시해 「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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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의 맹반격에 당황하는 일본
미국이 드디어 총반격을 개시했다. 본토방위를위해 합섬·면·어망등 3개 섬유제품에대해서는 수입을 규제하고 「컬러」TV는 「덤핑」및 뇌물수수가 있다는 이유로 사직당국에 그 조사를 의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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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연합군 반격개시
【팀·스피리트작전지역=특별취재반】 최대규모의 한미연합 「팀·스피리트78」 작전은 12일 동해안○○지역에 대한 한미해병의 상륙작전과 서부전선 한미1군단의 총반격으로 절정을향해 줄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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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스피리트 78」작전 개시
「팀·스피리트78」(단체정신) 한-미 연합작전훈련이 7일 D「데이」의 막을 올렸다. 한- 미간에 수도권방위 결의를 다지는 사상최대규모의 이 작전은 한-미군 10만7천명과「랜스·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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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 노 기자들과 회고담
정일권 국회의장은 26일 낮 국회 의원식당에 방한 중인 한국전종군기자 63명을 초대, 오찬을 베풀고 6·25당시를 회고하며 자신의 비화를 소개. 정 의장은 『인천상륙전 때 작전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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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전시동원태세
【브양트얀11일로이터·AFP종합】「라오스」정부군은 지난 3월29일 「타이」와 경계를 이루는 「메콩」강상의 「칭추」도를 약1백명의 우당 반정부군에게 점령 당한데 이어 11일 아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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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5년만에 정상탈환
육군은 고대의 포화를 잘 막아내면서 후반 김홍섭의 결승 「골」로 1-0으로 승리, 5년만에 국내축구의 패권을 다시 안았다. 23일 서울운동장에서 벌어진 제30회 전국종합축구선수권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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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25 20주…3천여의 증인 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 전쟁 3년|38선 돌파와 북진(3)|한국군의 월경
맥아더 원수는「워싱턴」과 38선 돌파 북진에 관한 권한을 요구하면서 한편으로는 북한작전 계획을 미리 착착 준비시키고 있었다. 그 계획의 골자는 미8군은 경인지역을 통과하여 38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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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낙동강아 잘있거라(5)
(하) 괴뢰군이 38선을 넘어 낙동강 교두보 일대에 도달하여 공격을 개시하기까지는 약 한 달이 걸렸다. 즉 수도서울은 3일만에, 대전은 20일만에 각각 점령했지만 그들이 낙동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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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낙동강아 잘 있거라(2)|8군의 총반격(2)|6.25 20주…3천여의 증인회견 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3년
낙동강 교두보를 공격하던 북괴군 13개 사단은 9월16일부터 전개된 미 제8군의 총반격에 맞서 18일까지는 일진일퇴의 격돌을 되풀이했지만, 19일부터는 점차 수세에 몰리기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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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6·25」20주…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3년|8군의 총반격(1)낙동강아 잘 있거라(1)
인천의 기습상륙성공을 누구보다도 가장 기뻐한 것은「월튼·워커」장군과 그 휘하의 8군 장병이었다. 미8군은 근2개월 동안 손바닥만한 낙동강교두보에서 괴뢰군 13개 사단의 맹공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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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6·25 20주…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역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3년|낙동강 공방전(25)|영천회전(3)
1주일에 걸친 영천회전에서는 적 제15사단 전부와 8사단 일부를 완전히 섬멸했다. 특히 적 제15사단은 분대장 급 이상이 모두 중공군 출신의 정예부대로서 8월 공세 때에는 미제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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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6·25 20주…3천여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3년|낙동강 공방전(23)|영천회전(1)
북괴군이 마지막 안간힘을 기울인 9월 총공세 때 낙동강 교두보는 여러 곳에서 몇 번 아슬아슬한 위기를 겪었지만 그 으뜸가는 것이 영천이 뚫렸을 때였다. 지도를 보면 일목요연하게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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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6·25 20주…3천여의 증인 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3년|돌출부의 혈전(3)|낙동강 공방전(22)
적은 마지막 9월 총공세 때 돌출부에 대해 또 한번 강습을 시도했다. 낙동강 교두보에 대한 8월 공세가 좌절 된지 대체로 10여일 후에 재게된 적의 9월 공세는 그들로서는 승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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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마산의 위기 (4)|낙동강 공방전 (14)|「6·25」20주…3천명의 증인 회견·내외 자료로 엮은「다큐멘터리」한국 전쟁 3년
킨 작전에서 좌익을 맡은 미 해병대는 12일 아침 사천을 향해 진격을 재촉했다. 봉암리에서 적에 포위된 우군 포병대를 구출하려고 제3 대대가 그곳으로 차출됐지만 주력 부대는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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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낙동강 공방전(10)|동부전선(7)|「6·25」주…3천 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한국전쟁3년|적, 기계에 2차 대 공세
동부전선에서 벌어진 가장 치열한 공방전인 기계·안강전투는 2개의 장으로 나누어 살필 수 있다. 제1장은 적8월 공세 때에 14일부터 18일까지 전개된 전투에서의 아군의 대승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