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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 장씨(제자 초정 권창윤)
장씨는 우리나라 9번째 대성. 75년 국세조사에서 전국에 13만7전2백45가구, 약60만이 분포한 것으로 나타났다. 본관은 문헌상 40여 본이 전하나 현존하는 것은 30여 본.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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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고령 박씨
박씨는 김·이에 이은 우리 나라 3번째 태생. 남한에만 약4백만명, 전체인구의 10%를 웃도는 숫자다. 그러나 그중 고령 박씨는 불과 3만여명으로 「대성속의 희성」인 셈. 신라왕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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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의 고향(11)청송심씨
이조5백년을 통해 청송심씨는 정승이 열셋에 왕비가 셋, 부마(임금의 사위)넷을 낳는등 사색의 주류인「서인집」으로, 혹은 왕실의 외척으로 이 나라 정계를 주름잡았다. 청송심씨의 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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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영양천씨
「가정을 잊고 나라일을 걱정함은 충이요, 적을 이겨 난리를 극복함은 장이며, 부모를 정성껏 모시는 것은 효이니라」(우구망가왈충, 승적극난왈장, 위친지성왈효). 4백년전 임진왜란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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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의 고향|청주좌씨
제주에서 발원한 성씨라면 흔히 고·부·양 3성을 꼽는다. 그러나 3성외에 제주에만 7백여 년을 뿌리내려 살아온 또 하나의 성씨가 있다는 사실은 정작 제주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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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 현씨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소월의 명시 「진달래꽃」으로 널리 알려진 평안북도 영변의 옛 이름은 연주. 연주 현씨는 바로 이곳 영변에서 8백여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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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양 조씨
예부터 도덕과 학문·벼슬은 명분이 갖추어야 할 기본요건이라 했다. 여기에 권세까지 곁들였을 매 명문벌족이라 칭한다. 풍양 조씨는 안간 김씨 일문과 한치의 양보 없는 세도정치의 쌍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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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설 작가 이해조는 언론인·교육자로 다양한 활동
지금까지 단편적으로만 알려졌던 신소설작가 이해조의 가계와 생애에 대한 전모가 밝혀져 학계의 주목을 받고있다. 한신대 이용남 교수(국문학)는 최근 논문『이해조 연구』를 통해 이해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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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소설 속의 여인상|한국여류 문학인회서 세미나
한국여류 문학인회는 27일 남한산성에서 『조선소 문학과 여인』이란 주제로 81년 문학세미나를 연다. 「조선조 여류문학의 재조명」(김일근 교수·건국대), 「조선조 소설 속의 여인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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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청결
마음의 청결이라하면 마치 명경지수와 같이 밝고 맑고 깨끗한 심정을 표현한 말인데, 사실 우리가 일상생활에 있어 이러한 「마음가짐」을 줄곧 계속할 수가 있을까. 아마 이는 성인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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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군 축내리 삼정부락|만5천 가락 4색 왕골로 청·황용이 춤추는 용문석를 엮는다
완초피를 l만5천 개가 돗틀로 이어지면 청용·황용이 하늘로 오르고 쌍학이 너울너울 살아 춤춘다. 지열이 이글거리고 불볕이 쏟아 부어지는 한여름. 삼베고쟁이에 대청마루에 발을 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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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솥바위」중심 20리 안팎서 네 거부 탄생 의령읍 정암리
『저게 솥바위(정암) 아닙니꺼. 물 속에서 보면 솥처럼 다리가 셋이라예. 옛날엔 여름이먼 거북이가 나와서 놀았다카는데 근방 20리 안팎에서 큰부자가 나온다는 말이 전해오지예.』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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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종의 위선
(공은 한 나라를 덮고 죄는 천하에 가득 찼다) 이 말은 고려말 이성계 일파인 윤소종이 최영을 평한 말이다. 뜻인즉, 고려에 대한 공은 더할 수 없이 크나 요동정벌을 획책하여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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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실과 돈에 끌려 투표하면 씻을 수 없는 후회 남긴다
해방 후 선거부정으로 인한 심각한 후유증이 누차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타락선거니 탈법이니 하는 말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국민이 어지간히 건망증이 심한 심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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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의 도전 본사창간15주년기념 특별기획 국내외석학 100인의 「그룹인터뷰」(2)
우리역사상 국세가 가장 융성하고 문화가 찬란했던 시대는 신라1천3백년이었다. 한반도의 동남쪽에 자리한 신라는 원래 문화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고구려와 백제에 비하면 후진국이었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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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닌 속설론 반증 성립 안 된다"
사실을 논하는 글은 어떤 경우에도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구체적으로 논박하는 것이 상식이며 정도다. 속설이나 통설을 가지고 반증 없이 얼버무리면 쟁점만 흐리게된다. 지난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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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평론가의 잘못된 고증을 고발한다|신규호씨의 지난주 TV주평을 읽고- 신봉승
창작에 종사하는 사람이 주평과 같은 짧은 글에 일일이 의견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고증을 운운하는 글이 전혀 사실과 어긋나고 있으면 평자의 무지는 고사하고라도 독자나 시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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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는 원래 이성계 파|권력다투다 태묘동서피살
□…고려말의 충신으로 개성의 선죽교에서 순절한 것으로 알려지는 정몽주가 고려의 충신이 아니라 이성계파이며 그가 죽은 곳도 선죽교가 아니라 태묘동이라는 학설이나와 주목을 끌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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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진출 「러시아」군 선봉, 꺾은 신유 장군 재평가해야-한·로 관계사 전공 박태근씨 역설
이조 효종 때 청의 요청으로 「러시아」비적을 무찌르기 위해 흑룡강에 출병한 신유 장군의『북정일기』(월간중앙 78년2월호에 전문번역 소개)가 작년2월 대구서 발견되면서 「러시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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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신장군의 일대기
○…MBC-TV『역사의 인물』 (2일하오 7시25분)은 정충신편. 조선조 무인인 그는 l592년무과에 급제한후 1624년 도원수 장만의 휘하에서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데 위용을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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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요동정벌의 웅지와 최영 장군
만주의 서남부 요동은 역사적으로 한반도의 숨통에 해당된다. 고구려이래 중국과의 끊임없는 쟁탈전은 누가 이 요동을 확보하느냐에 열쇠가 있었다. 이 오랜 전국민적 소망을 실현코자 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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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년을 이어온-민족의 슬기 (19)|매천 황현과 절명시
구한말 일제가 조선 침탈 야욕을 노골화하자 망국을 지켜보고 있던 이 땅의 지식인들은 대략 네가지 길을 택했다. 가장 많이 택한 것은 의병. 유인석·최익현·민종식·신돌석 등 전국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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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대 토론…우리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율곡 이이와 한국 사상의 맥락
국사상 수많은 위인과 명사들 가운데서 가장 우뚝한 세분으로 우리가 세종대왕·율곡 이이 선생·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꼽는다면 아마 한국 사람으로서는 별다른 이론이 없을 것이다. 이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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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보다 정도전이 앞선다"
최근 국사학계는 인문계 고등학교의 국정 교과서인 『국사』 조선조 중 성리학의 서술 문제를 둘러싸고 「오류」라는 주장과 그렇게 말하는 것은 「편견」이라는 주장이 맞서 있다. 이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