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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함께 명암 교차…'국정원장 잔혹사'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상납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병기(70) 전 국정원장이 13일 검찰에 출석했다. 이로써 남재준·이병호 원장을 포함해 박근혜 정권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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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욕의 정보 최고책임자]'정권안보' 뒤안길 충성과 배반 두얼굴
국가정보책임자는 권력이동과정에서 청산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재임시절 무소불위의 실세 (實勢) 로 군림한 책임자일수록 권력을 놓은 뒤의 모습은 초라하다. 구속이 임박한 권영해 (權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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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내란혐의 반대訊問 결산-집권시나리오 조목조목 반박
신군부측 인사들의 5.17 내란 혐의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이 17일 마무리됐다. 이에 따라 5.18 부분 변호인 반대신문과 증인신문만을 남겨놓고 있는 이 사건 1심 선고가 빠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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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5.18사건 12차공판 이모저모
10일 열린 「12.12 및 5.18사건」 12차 공판에서는5.18을 둘러싼 변호인 반대신문이 진행됐다.다음은 전두환(全斗煥)피고인에 대한 신문내용. -최규하(崔圭夏)대통령은 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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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재판 지상중계
6일 열린 「12.12및 5.18사건」 7차 공판에서는 80년 신군부측의 5.18 내란행위에 대한 검찰 직접신문이 진행됐다.다음은 검찰 신문과 피고인들의 진술내용. -5.18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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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사건 공판 갈수록 교묘해지는 전두환씨 재판답변
비자금사건 공판때 시종 수세에 몰렸던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이 22일 열린 5.18사건 공판에선 특유의 말솜씨를 구사하며적극 방어전을 펼쳤다. 全씨는 검찰의 막대한 예산과 정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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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씨 5.18사건 5차공판-집권 시나리오 신문 1.
22일 열린 「12.12및 5.18사건」 5차 공판에서는 집권 시나리오 존재여부를 비롯한 80년 신군부측의 내란음모에 대한 신문이 집중됐다. 다음은 전두환피고인에 대한 검찰 직접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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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하씨 방문조사 무산 다른 방법없나
한사코 검찰 조사를 거부하고 있는 최규하(崔圭夏)전대통령에 대한 조사방법이 없을까. 검찰은 12일의 1차 방문조사 시도가 실패로 끝나자 향후 조사대책을 마련하느라 고심중이다.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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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씨,中情예산 수백億 80년 정권장악에 사용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이 80년 중앙정보부장서리 재직 당시 수백억원의 중정 예비비및 정보예산을 신군부 활동,국가보위입법회의 운영등 정권장악 자금으로 사용해온 사실이 밝혀졌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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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은 DJ조종 민중봉기 대응책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이 지난 7월 검찰에 제출한 5.18 답변서에서 『5.18은 김대중(金大中)씨가 조종한 민중봉기에 대한 대응조치였다』고 주장한 것으로 19일 알려졌다. 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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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수사 발표요지-10.26이후 時局상황
◇보안사령부=10.26사건으로 비상계엄이 선포된후 朴대통령시해 사건등을 수사하기 위해 계엄사에 합동수사본부가 설치돼 전두환보안사령관이 본부장에 취임했다.보안사 처장들도 합수부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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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하 하야 밀사 김정열
全斗煥의 신군부는 집권을 전후해 군선배들을 대체로 격하했다. 그중 예외적인 인물은 몇명 되지 않았다.신군부가「12.12쿠데타적 사건」에 가담하지 않은 선배중 존경하는 사람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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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수석, 5공경제 기틀 잡아|"국정추진 군 출신 만으론 역부족"
이미 언급한 것처럼 80년 4월14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중정부장 서리 직을 겸직한데 이어 5·17, 5·18, 국보위설치, 최대통령 하야 등의 과정을 거쳐「대통령 전두환」이 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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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최 대통령 하야 "초읽기"
5·17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조치로 내각을 무력화시킨 신 군부는 내각과 계엄사 사이에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라는 절묘한 기구를 끼워 넣어 양쪽을 통제하면서 권력질서의 근본적 개편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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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넘기는 「광주」 진상규명
22일 새벽까지 22명의 증인을 신문하고 금년 청문회 활동을 마감한 국회광주특위는 그 동안 광주민주화운동의 발발동기부분과 맞물려 있는 △12·12사태와 5·17조치 △김대중 내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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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광주청문회」지상중계|"군부 사조직 단결 저해요인 아닌가"
국회 광주특위가 21일 박준병(당시 20사단장)·정웅(당시 31사단장)·서명원(당시 전남대학생과장) 씨의 증언을 듣는 것으로 일단 금년도 청문회활동을 매듭지었다. 박준병씨 증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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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광주청문회」지상중계|"발포보고 못 받았다니 말이 되나"
국회광주특위는 19일 제3차 청문회를 속개, 이희성 당시 계엄사령관과 소준열 당시 전남 -북 계엄분소장을 상대로 5·18이후 5·27 광주사태 진압 때까지의 상황에 대해 신문을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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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압작전 전날 밤에 들었다."
◇신기하 의원(평민) 신문 -전두환·노태우씨와 증인은공수여단장 출신으로 아는데. 『그렇다.』 -12·12 당일 방 장태완 수경사령관·정병주 특전사령관 등이 체포·구금된 사실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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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확대 내각과 협의 없었다|광주특위 청문회 신현확 전 총리 증인신문
국회광주특위(위원장 문동환·평민)는 6일 오전 신현확 전 국무총리 및 이신범씨(김대중내란음모사건관련자), 한상석씨(당시 전남대학생회간부)등 증인을 출석시킨 가운데 5·18광주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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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영웅주의자」대 「운동권 대부」
허문도씨가 전두환 정권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80년2월 초였다. 그는 79년 초 조선일보 주일특파원을 마치고 외신부차장으로 발령 받았으나 입사2기후배가 외신부장으로 오자 사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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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력형 축재 12·12 후 본격 내사
권력형 부정축재자 「처벌」문제는 10·26 직후 보안사 비서실장 허화평 대령에 의해 제기돼 12·12로 힘을 장악한 뒤인 79년 말 본격적으로 작업이 시작됐다. 이때는 공화당 정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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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 80년 서울의 여름(5)전장군 중정부장 겸직이 정권관심 갈림길
「12·12」 세력이 본격적으로 정권에 관심을 갖고 행동을 개시한 것은 80년 4월14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중앙정보부장서리 겸직발령 때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주도세력 내의 일치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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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국보위 발족 명분 광주 사태서 찾았다
국보위의 인선과 출범 준비를 논의한 80년5월28일, 경복궁 멤버 회의의 핵심은 이른바 12·12사건 직후 「3장군」으로 불리던 전두환 중장 (보안 사령관) 노태우 소장 (수경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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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중정부장서리 사표
전두환 중앙정보부장서리겸 국군보안사령관은 2일 상오 최규하대통령에게 중앙정보부장직에 대한 사표를 제출했다. 이같은 전장군의 중정부장직 사표제출은 그가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