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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죽지않는다”민영환 유서·거문도역사공간,등록유산된다
민영환 유서(명함) 전체.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은 11일 ‘여수 거문도 근대역사문화공간’과 ‘민영환 유서(명함)’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민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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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577돌 한글날 특별대담 | 국어학자 전영우와 이낙연 전 국무총리, ‘말의 품격을 논하다’
“말은 곧 인격, 나를 낮춰야 마음 얻는다” ■혐오와 폭력을 조장하는 말, 방치하면 사회문제 심화 ■정보의 범람이 오히려 ‘정보 편식’과 ‘탈 진실’ 부추겨 ■진실이나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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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조약 못 막아 용서 빈다'던 충정공 민영환, 충정로에 서다
충정로 민영환 동상. 김정연 기자 "나라의 치욕과 백성의 욕됨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우리 민족은 장차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리라." 충정로의 시작점에 충정공의 동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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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프리즘] 대북전단 살포와 접경지역 주민
전익진 사회2팀 기자 “이제 대북전단 살포로 인한 접경지역 긴장에서 벗어날 것으로 기대했는데 곧바로 예전 상황으로 돌아갔으니 허탈합니다.” 최근 한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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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매단대도" 탈북단체, 금지법 후 대북전단 50만장 뿌렸다
지난달 말부터 대북전단을 금지하는 개정 남북관계발전법(대북전단금지법)이 시행된 가운데 탈북단체가 예고한 대로 전단 살포를 강행했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은 30일 “지난 25∼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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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 논설위원이 간다] “애국과 친일, 이분법 넘어 극일의 잣대로 안익태를 보자”
━ 안익태 친일 논란 재연 속에 만난 유족의 항변 애국가 작곡가인 안익태가 1942년 9월 나치 치하의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홀에서 만주국 건국 10주년 기념음악회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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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관범의 독사신론(讀史新論)] “당파 버리고 단결하라” 그날의 매서운 채찍질
━ 100년 전 임시정부의 3·1절 기념식 1921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제2회 3·1운동 기념식 현장. ‘독립선언기념’‘대한민국’ 문구가 선명하다. 태극기 등 만국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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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글중심] 북한 식량 지원 논란... “미사일 쐈는데?” vs “남는 쌀 이용해야”
■ 「 [연합뉴스] 정부가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을 공식화했습니다.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은 8일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식량 지원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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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최초의 국무총리 이동휘 선생을 아시나요
상하이 임시정부 인사들과 함께 찍은 사진. 가운데 화환을 목에 건 사람이 이승만 대통령이다. 그의 오른쪽 인물이 이동휘 선생이다. 신인섭 기자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이 이승만이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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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일제 침략에 맞서 ‘단일민족’ 의식 고취에 나선 지식인들
1907년 이 땅에 온 영국 언론인 매켄지가 찍은 『대한매일신보』 편집국. ‘민족’이 ‘상상의 공동체’로서 근대의 산물임을 밝힌 베네딕트 앤더슨이 민족의 형성과정에서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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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만보산 사건으로 화교 박해 피바람 불다
만보산 사건의 발단이 된 수로(水路). 농수로 건설을 둘러싼 한·중 두 민족 농민들 사이의 대립은 1931년 7월 1일 만주 거주 한국인들의 법적 보호자를 자처하는 일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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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13도 창의군 군사장 허위, 고종 복위 등 32개조 요구하다
서대문형무소 최초의 순국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허위(許蔿·1854~1908). “고관(高官)이란 제 몸만 알고 나라는 모르는 법이지만, 허위는 그렇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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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민족혼 깨우자” 나석주 열사 동양척식회사에 폭탄 투척
나석주(얼굴사진) 열사가 응징의 폭탄을 던진 일제 침략의 중심기관 동양척식회사. 1908년 세워져 1945년 패망까지 존속한 동척은 토지가 최대의 생산수단이었던 한국을 경제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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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말하게 하라
2009년 한국 뮤지컬이 길어 올린 최고의 수확은 단연 ‘영웅’이다. 현란한 무빙 라이트, 추격신의 긴박한 안무, ‘누가 죄인인가’ 장면의 절묘한 조화 등 한국 뮤지컬이 일찍이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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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4인 소재 창작판소리 ‘열사가’ 공개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다룬 일제강점기 시대의 판소리 ‘열사가(烈士歌·오른쪽 사진)’가 공개됐다. 중앙대 창작음악학과 노동은 교수는 판소리 명창 고(故) 박동실(1897~1968·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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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구한말 권력 실세 민영환 자결로 과오 씻고 충절 남기다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으로 조선은 허울만 남은 나라가 되었다. 같은 달 30일 충정공 민영환(1861~1905)은 왕조의 몰락에 책임지고 자결로 속죄하였다. 그가 남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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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이봉창 의사 중 누가 먼저 의거?
[문항 2] 다음 글들은 일제 침략에 맞서 싸운 인물들이 남긴 말이다. 이를 시대순으로 올바르게 정리하면? ㄱ.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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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공 애국심 살아 숨쉰다
"오호라, 나라의 수치와 백성의 욕됨이 여기에 이르렀으니……영환은 죽음으로써 이천만 동포 형제에게 사죄하노라." 충정공 민영환(閔泳煥,1861~1905)이 일제 강압으로 을사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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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사회주의 항일운동가 김산 일생 영화로 만든다
"이천만 동포야 어데 있느냐/삼천리 강산만 살아있네/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지금은 압록강 건너는 유람객이고/삼천리 강산도 잃었구나" 중국을 무대로 항일 투쟁을 벌이다 중국 공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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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소나무야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쓸쓸한 가을날이나 눈보라 치는 날에도/소나무야 소나무야 변하지 않는 네 빛/소나무야 소나무야 너희는 우리 동무/갑갑한 일이 있어도 어려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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抗日신문.傳單무더기 발견-梨花莊소장자료
3.1민족운동을 촉발시키고 전민족적 반일운동으로 확산시키는데중요한 역할을 했던 각종 신문.전단과 국민적 운동을 제지하기 위한 을사오적(乙巳五賊)중 한명인 이완용(李完用)백작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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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휘선생 글 7점 발굴/“을사5적 처단” 상소문등 포함
상해 임시정부 초대국무총리를 지낸 성재 이동휘선생이 을사늑약체결 직후 국왕에게 을사오적을 자신의 손으로 처단하겠다고 올린 상소문과 하야시(임권조) 주한일본공사 등에 조약의 부당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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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한민족의 자아각성(14)|그 연원을 찾아서|조동일(서울대교수·국문학)
신재효(1812∼1884)만큼 자기고장에서 칭송되고, 또한 전국에 널리 알려진 인물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전라북도 고창읍내에 가보면 신재효가 살던 초가가 중요민속자료 제39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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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만의 대합창|다시 3·1절에|장순하
동포여! 형제여! 목이 메는 이름이여! 우리 구원의 어머니 조국 땅에 귀를 대고 예순 일곱 해 지난 그 소리를 들어 보라. 일구일구년 삼월 초하루 숨겨 둔 깃발들 성화처럼 받쳐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