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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22. 따뜻한 진료
인천에서 처음으로 태어난 네 쌍둥이 앞에서 활짝 웃고 있는 필자. 병원에 오면 환자들은 대부분 긴장한다. 그들의 표정에는 두려움과 불안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의사가 환자의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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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21. 환자 진료 25시
바쁜 개업의 시절에 바깥 세상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신문을 읽는 것이었다. 진료에 몰두하고 환자에게 헌신적으로 의무를 다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기 위해 나는 후학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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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20. 무의촌 진료
무료 진료와 이·미용 봉사를 마친 뒤 마을 이장으로부터 감사장을 받고 있는 필자. 어느 날 인천 지역 미용사협회 간부가 병원으로 나를 찾아왔다. 미용사협회 회원 중 특히 어려운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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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19. 영종도 산모
무의촌 진료를 마치고 환자들에게 여성질환에 대해 강의하고 있는 필자. 의사라면 누구나 잊혀지지 않는 환자가 있다. 생사를 넘나드는 절박감 속에 나를 찾아온 환자가 많았지만, 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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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18. 언니
왼쪽부터 언니·어머니·필자. 내가 밀려드는 환자들 속에서 진료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묵묵히 뒤에서 도와준 '숨은 공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세 살 위 언니다. 부모님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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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17. 정이 넘치는 병원
필자(右)가 이길여 산부인과 2층에서 밖을 내다보며 웃고 있다. 나는 휴일도 없이 365일 이른 아침부터 환자를 진료했다. 위급한 환자들이 워낙 많은 시절이다 보니 24시간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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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16. 보증금 없는 병원
이길여산부인과에서 진료하고 있는 필자(오른쪽에서 둘째). 병원을 개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원장님, 위급환자예요." 진료 중인 나를 향해 간호사가 뛰어 오며 다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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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15. 이길여 산부인과
신축한 ‘이길여 산부인과’ 옥상에서 간호사와 포즈를 취한 필자(左). 4년여의 결코 짧지 않은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다. 김포공항에 마중 나온 어머니와 가족.친지들을 부둥켜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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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14. 귀국 준비
병원 파티에 참석한 필자(아랫줄 맨 왼쪽)와 설리반 교수(필자의 어깨에 팔을 두른 사람).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나는 우리 국민의 신명을 확인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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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13. 환자를 위한 병원
1988년 길병원과 토마스 제퍼슨 의대의 자매결연 조인식에서 닥터 고넬라(左)와 함께 한 필자. 최근 선진 의료시스템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해외 탐방에 나서는 의료기관들이 적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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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12. 내 인생의 로맨스
첫 데이트때 입었던 원피스 차림으로 센트럴 파크에서 포즈를 취한 필자. 내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는 '왜 결혼을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럴 때면 "혼자 살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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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11.미국 수련의 시절
퀸즈 종합병원 수련의 시절 동료 의사들과 함께(왼쪽에서 둘째가 필자). 5년에 가까운 미국 생활은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 나는 메리 이머큘리트 병원에서 1년의 인턴 과정을 마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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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10. 뉴욕에 가다
수련의 생활을 하던 미국 병원의 스태프들과 함께 포즈를 취한 필자(서 있는 사람 중 오른쪽). ECFMG(외국의대 졸업생 등록 교육위원회) 자격증 시험에 합격한 뒤 신청서를 제출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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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9. 미국 유학
미국 유학을 떠나는 날 김포공항에서 포즈를 취했다. 군산도립병원과 서울적십자병원에서 수련생활을 하면서 미국 유학에 대한 열망이 다시 꿈틀거렸다. 문제는 유학경비였다. 항공료 정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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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8. 참 봉사자 닥터 골든
‘퀘이커 의료봉사단’일원으로 참 봉사자의 모습을 보여준 닥터 골든(左)과 필자. 전쟁이 끝나자 부산전시연합대는 문을 닫았고, 서울대도 서울로 옮겼다. 나는 학교 근처인 서울 혜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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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7. 부산전시연합대
부산전시연합대에서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과 포즈를 취한 필자(右). 서울대 의대에 합격한 나는 축하 대신 빈정거림을 들어야 했다. 어머니와 언니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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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6. 의사가 될래요
이리여중 시절 수학 선생님과 교정에서 포즈를 취했다. 뒷줄 왼쪽이 필자. 소학교 시절 교의(校醫)였던 이영춘 박사는 '의사가 되겠다'는 내 꿈을 키워준 분이다. 하얀 가운을 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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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5. 죽음에 대한 공포
필자가 태어나서 여학교 시절까지 자란 전북 옥구군(현군산시 옥구읍) 대야들녘. 의사는 늘 죽음 곁에 있다. 병원에서 주검을 보는 것 역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제는 죽는 것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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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4. 강아지 포대기
언니가 학교에 간 사이 언니가 아끼는 인형을 안고 어머니와 포즈를 취했다. 멀리서 아스라이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 일반적으로 정겨운 고향의 정취련만 나에겐 그렇지 못한 가슴 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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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3. 어머니의 태몽
어릴 적 내 눈에는 크고 듬직하던 고향 집이었는데 이젠 초라하고 낡은 개량 주택으로 변모해 마음 한구석을 아리게 한다. "들일이 한창인 여름이었지. 새참이 든 광주리를 일꾼들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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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2. 가족이야기
열여섯 나이에 시집와 30명이 넘는 대가족 뒷바라지를 한 어머니 차순녀(右)와 아버지 이동숙(左). 전북 군산 초입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차머리를 돌려 처음 만나는 소담한 마을이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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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1. 새로운 꿈
나는 학생들을 '우리 아이들'이라고 부른다. 아이들을 만나면 난 격의 없는 할머니 모습으로 돌아간다.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는 교육이야말로 내가 평생 힘을 쏟아야 할 사업이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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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야드 너머로 펑펑 "나이 날려 버리죠"
"제 별명이 '드라이 싱'입니다." 첫 홀 드라이버 티샷을 보고 동반자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자 가천 길재단 이길여(74) 회장이 한마디한다. 이 회장과 얼마 전 안양베네스트 골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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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 1+1 자원봉사 서약자 전체 명단
(가나다 순) 강두희 연세대의과대학 명예교수 강보향 월간우먼라이프 편집장 강성종 국회의원 강송구 GS칼텍스㈜ 상무 강영훈 전 국무총리 강지원 변호사 강창오 포스코 사장 강창일 국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