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20. 무의촌 진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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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무료 진료와 이·미용 봉사를 마친 뒤 마을 이장으로부터 감사장을 받고 있는 필자.

어느 날 인천 지역 미용사협회 간부가 병원으로 나를 찾아왔다. 미용사협회 회원 중 특히 어려운 처지에 있는 회원들이 병원비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하러 온 것이다. 나는 기꺼이 승낙했다.

그러자 이 간부는 병원에서 무의촌 진료에 나설 때 미용사협회 회원들을 데려가 달라고 했다. 무의촌 지역 주민에게 커트와 퍼머를 해주고, 이()도 잡아주는 봉사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당시 무의촌 지역 사람들은 의료 혜택을 받기 어려웠을 뿐 아니라 머리도 제대로 깎지 못했으니, 정말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뒤로 난 미용사협회 회원들과 무료 진료에 나섰다.

마을 이장집 대청마루에서 진료를 하고, 마당에서 머리를 깎고 다듬는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졌다. 이가 많아 머리를 다듬거나 깎기 전에 눈과 입을 가리게 하고 머리에 살충제인 DDT를 뿌렸다. 그러면 시커먼 머릿니가 우수수 떨어지곤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요즘 DDT라는 살충제를 사람에게 직접 뿌렸다가는 큰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그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사실 나와 간호사들은 이 일이 있기 전부터 무의도로 정기 진료를 다녔다. 그 시절만 해도 대부분의 서해 섬마을에는 의사나 병원이 없었다. 당연히 평생 병원 구경은커녕 의사 얼굴 한 번 못 본 섬사람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병에 대한 지식도 없고, 병원을 찾아갈 엄두도 못 내는 주민을 위해 진료와 질환에 대한 교육을 해줬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예기치 않은 난관도 많았다. 인천 앞바다에 섬이 오죽 많은가. 그 섬들을 한 바퀴 돌아오려면 적어도 열흘은 잡아야 했다. 그것도 하루 두세 곳을 걸어서 돌아다녀야 하는 강행군이니 고생은 말도 못할 정도였다. 그래서 효율적인 진료방안이 필요했다.

무의촌 진료 계획을 잡은 뒤 섬에서 온 환자를 통해 일정을 알려주고 영흥도.이작도 등 큰 섬으로 인근 섬주민을 모이도록 해 한꺼번에 진료와 머리 손질을 병행했다.

무료 진료를 시작한 지 몇 해 뒤인가 싶다. 병원 식구들과 영종도에 다녀오던 때였다. 영종도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다 근처 다방으로 들어갔다. 커피를 주문하는데,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다방 주인 여자가 다가와 흥분한 목소리로 "이길여 선생님 아니세요? 선생님은 제 생명의 은인이세요"라며 나를 덥석 끌어안으며 울먹였다.

"자궁외 임신으로 입원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수술은 엄두도 못 내고 죽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무료로 수술을 해 주셨어요"라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나는 그날 그 주인에게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대접받았다.

지금도 봉사활동하러 다니던 그때를 생각하면서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능력과 그 안에서 삶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의사가 되도록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해 주신 어머니께, 그리고 오늘의 나를 만들어주신 모든 이에게 감사한다.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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