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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경무대사계(48)황규면
부산 피란 시절의 대통령관저는 경남 도청 뒤에 자리잡은 지사관사였다. 이대통령은 이 지사관사의 조그마한 방에서 집무했다. 너무도 초라한 집무실이어서 우리비서들이 민망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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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휴선 회담의 개막 (20)|「6·25」21주…3천여의 증인회견·내외 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 전쟁 3년|포로 논쟁 (1)
1952년1월2일 「유엔」군 측은 의제 제4항을 다루고 있는 분과 위원 회의에서 포로 교환에 있어 이편의 기본 입장을 밝히는 다음과 같은 제안을 내놓았다. (1)포로는 1대1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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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휴전회담의 개박(4)|개성의 함정(2)|6·25 21주 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3년
1951년 7월10일, 개성에서 한국휴전회담 제1차 본회의가 열리게 되자 온 세계는 낙관적 기분으로 들떴다. 전선의 「유엔」군 장병들은 이제 곧 고국에 돌아가게 되리라는 기대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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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적의 춘계 공세(8)|국군의 고전과 반격(5)|3군단, 현리서 고배
적의 춘계 공세 때 가장 고전한 부대가 한국군 제3군단 소속의 제9사단과 제3사단이었다.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전선에 투입된 한국군9개 사단 중 5개 사단은 미 군단에 배속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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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기피 오점 남긴 체전-동계빙상대회 결산
전국체전 동계빙상대회는 빙속 부문의 기록이 저조한 채 시종 심판기피소동으로 얼룩져 체전사상 일대 오점을 남겼다. 국내 스포츠사상 유래가 없는 스피드·스케이트의 심판기피는 3일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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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적의 춘계공세(5)
전회에 이어 국군 제5사단과 그 우측에 인접한 제7사단의 전투상황을 살펴보겠다. 앞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중공군은 춘계공세 때 중부와 중동부에 주공을 두었기 때문에 이 방면에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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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적의 춘계공격-최후의 결전(2)
1951년 4월초, 50만 병력을 가진 「유엔」군은 거의 모든 지역에서 다시 38선을 넘어가고 있었다. 명장 「마쉬·B·리지웨이」장군의 출혈작전(Operation Killer)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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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의 새아침-첫 햇살이 영하의 새하얀 고지를 밝혔다
【중부전선=이두석기자】온누리가 새하얀 서설에 묻힌 전방고지의 새아침은 야간잠복조 병사들이 쭉 뻗는 기지개와 함께 활짝 밝아왔다. 『누구얏-』 『비로봉』―. 전선은 이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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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설 악이 뚫렸다|소금강 천험 헤치고 동서 잇는「하늘의 하이웨이」
대설 악이 뚫렸다. 동해 양 양에서 진부령을 넘어 인 제에 이르는 1백20km의 설악산 우회도로 대신 영동과 영서를 46km로 가로지르는 설악산 횡단도로가 착공한지 6년만에 완공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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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맥아더 원수 해임(8)
(3) 「맥아더」 원수가 해임되던 1951년4월11일 한국전선에는 심한 폭풍이 휘몰아쳤다. 춘래불사춘격으로 일부 지역에는 눈과 우박이 쏟아지고 강풍이 불어 원수의 파면소식을 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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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회교도31명 피살
【마닐라23일AP급전동화】「필리핀」남부6개 지방도시에서22일 실시된 특별선거에서 투표 후 경찰호위 하에 귀가 중에 있던 회교도 31명이 「필리핀」육군에 의해 사살되었다고 보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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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변상습국 타이
「타이」는 군사 「쿠데타」로 입헌 군주정을 세웠고 또 그 때문에 아홉 차례나 헌법을 갈았던 정변상습의 나라이다. 말하자면 「타이」의 군부는 입헌민주정치의 파종과 죽음의 「키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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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전방…월동 준비완료
「휴전선국군전담」이후 처음 맞는 겨울철 전선은 적이 발붙일 수 없는 빙벽 같았다. 북한강 상류에서 동해안으로 뻗은 육군○군단예하 전선은 국군전담의 방어의지가 4반세기 동안 서려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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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7)문제안
예비회담의 결정한 바에 따라 본 회담이 열린 것은 3월20일 하오1시였다. 46년12월28일 이후 예비회담이 열리는 동안 사회상은 극도로 혼란했으나 (이 항목은 별도로 다루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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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유엔」군으이 총퇴각(7)「덩커크」의 흥남
장진호일대에서 중공군 6개사단에 포위된 미 제1해병사단의 혈로타개전투상황을 전회에 이어 관계기록과 자료에서 간추려 보겠다. 장진호서 남방의 유담리에 있는 미해병 제7연대와 제5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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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뱅이 농부 아들로 태어나 험구와 직선정치로 세계를 주름 잡았던 기재 공존을 심고 간 해빙 첫 주자 「흐루시초프」
23세대 글 배운 무학|회고록으로 물의도|둔한 표정이 경쟁자 싫은 스탈린 신임사 대전 후 복구 사업에 솜씨 보여 크게 승진 그 자신이 입버릇처럼 말했듯이 「흐루시초프」는 『산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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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제16화 한·미 합동첩보비화 「6006부대」(9)
북한괴뢰는 6·25동란 중 6006부대와 한국 공군 특무부대 합동 특수작전에 의해 MIG15기의 중요부분을 백주에 탈취 당하는 가하면 전선에 투입하려던 후방부대가 궤멸되는 등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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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제4야전군의 출현(하)|중공군 개입(3)|6.25 21주…3천 여의 증인회견, 내외 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3년
10월 24일부터 전개한 유엔군 총 추격전의 최종목표인 한·만 국경에 제일 먼저 도달한 부대는 국군 제6사단 2연대 수색중대의 제3소대였다. 20명으로 된 이 3소대는 10월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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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미병 집단난동
【평택=조원환기자】9일 하오 9시30분부터 10시30분 사이 1시간동안 경기도 평택군 팽성면 안정리 일대 K-6기지촌에서 인근 「K-6험프리즈」미육군기지 제23직접지원단소속 흑인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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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원산 (하)
「맥아더」원수는 원래 인천에 상륙,서울율 수복했던 미제10군단 (미제1해병사단과 미제7보병사단)을 해로로 부산을 거쳐 다시 원산에 상륙작전을 전개하여 서진시켜 서부에서 북상하는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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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6·25」21주 3천여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한국전쟁 3년
(6) 10월 19일 상오 11시쯤 평양은 국군 제1사단, 제7사단, 그리고 미 제1기갑사단에 의해 완전히 탈환됐다. 「프랭크·밀번」소장의 미 제1군단이 10월 9일 38선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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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6·25」20주… 3천 여의 증인 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3년
(5) 평양공격은 「프랭크·밀번」소장의 미 제1군단의 작전담당이어서 그 군단소속의 미 제1기 병사, 한국군 제1사, 미 제24사, 영국군 제27여단이 각각 1번 입성의 진격경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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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각제에 중독 된 주월 미군
미 육군은 월남의 미군장병들간에서 「마리화나」같은 환각제의 사용이 널리 만연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것이 더 이상 감추어 질 수 없게 되었을 때까지 극구 부인해왔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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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8선 돌파와 북진(7)|평양으로(4)|「6·25」20주…3천 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다큐멘터리」한국전쟁 3년
평양으로 일로 쇄도하는 국군 제1사단의 진격 상황을 다시 한 연대장으로부터 들어보겠다. 당시 평양공격을 직접 진두에서 지휘하고, 휴전 후부터 현재까지 국제정치학파 전사를 연구해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