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변상습국 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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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타이」는 군사 「쿠데타」로 입헌 군주정을 세웠고 또 그 때문에 아홉 차례나 헌법을 갈았던 정변상습의 나라이다. 말하자면 「타이」의 군부는 입헌민주정치의 파종과 죽음의 「키스」를 번갈아 한 것이다.
처음으로 헌법을 제정한 것은 32년. 「피분」장군이 「샴」왕국을 쓰러뜨리면서였다. 그러나 군주제도를 완전히 철폐하지는 않고 영국식의 입헌군주제에 머물렀다. 국민들의 국왕에 대한 충성심이 너무나 대단했기 때문이다. 「피분」장군은 2차 대전 중 일본 편에 섰으므로 전후 금방 축출. 그러나 47년 다시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가 57년 부하였던 「사리트·타나라트」원수에게 쫓겨났다.
「타나라트」군정독재정권이 내각수반으로 임명한 것이 바로 현 수상 「타놈·키타카촌」. 당시 육군대장으로, 말하자면 직업군인이었다. 「키티카촌」이 전권을 이양 받은 것은 63년 「타나라트」원수가 병사한 뒤.
그러나 이번 「쿠데타」극의 비결은 집권 전에 연마해둔 것이었다.
즉 58년10월 재정·경제위기가 극도에 달하자 별로 명분도 없이 의회를 해산하고 계엄령을 선포해서 보기 좋게 집권연장에 성공했던 것이다. 그때도 이번과 꼭 마찬가지로 군대와 경찰간부들 중심의 「혁명단」이란 걸 만들어 민주헌정의 묘지 위에 계속 집권의 꽃을 피웠었다.
63년 군사정권의 전권을 이양 받은 「타놈」은 5년 뒤 신 헌법을 공포(32년이래 9번째의 헌법임) 69년 2월까지 상·하 양원의 선거를 끝마쳤다.
그러나 이것은 민정이라는 탈을 쓰기 위한 형식이었을 뿐, 선거에 의해서 민간지도자들에게 정권을 넘겨주려는 것은 아니었다. 「타놈」주변에서 「쿠데타」설이 처음 나돌았던 것은 지난해 7월. 수입관세와 소비세의 인상법안이 의회에서 부결될 기미를 보였을 때. 의회는 이 법안이 「국방비의 조달」을 위해 제안되었다는 점을 들어 야당은 물론 여당의원들까지도 세차게 반발했다.
「타놈」은 의회에서 표결이 진행되던 날 『공산당을 색출한다』는 이유로 군대를 동원, 사실상 의회주변을 포위했다. 그러나 이때는 다행(?)스럽게도 이 법안이 1표 차로 통과되는 바람에 험한 장면을 면할 수 있었다.
따라서 「타놈」이 이번 예산안파동을 「쿠데타」극의 이유로 삼았을지 모른다는 추측은 충분히 나올 수 있다.
「타이」란 그 나라 말로 「자유」라는 뜻, 그러나 헌정40년 사상 진정한 민정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홍사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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