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3692)제79화 육사졸업생들(145)후방조직의 활약

    서울이 6군단 포병과 해병대에 의해 장악될 동안 후방부대의 활약은 어떠했나를 샅펴보자. 후방조직은 박소장이 부사령관으로 있던 2군사령부가 중심이 되어 참모장 이주일소장(65·함북경

    중앙일보

    1983.04.21 00:00

  • (3618)4기생 출신 장성-제79화 육사졸업생들(71)

    4기생중 유일한 중장인 이병형장군 (57·함남 북청) 은 언행은 차분하지만 어디에서나 돋보이는 군인이었다. 그의 깊은 지식과 인격·두뇌, 그리고 군인으로서의 자세와 능력때문일 것이

    중앙일보

    1983.01.24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3603》|제79화 육사졸업생들(56) 장창국 | 가족군인

    얘기가 좀 빗나가지만 「가족군인」얘기릍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우리군에는 한 집안에서 여러명의 장군·장교가 나온 무인가가 여럿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응준장군의 경우다. 일본육

    중앙일보

    1983.01.05 00:00

  • 제3공화국|가장 길었던 사흘

    5·16의 포진완료. 그러나 예정된 16일 0시 주력부대는 혼란 속에 있었다. 이 혼란을 모른 채 계획대로 출동한 것은 해병여단과 ×군단 포병단. 계획표 대로면 해병대는 마지막 진

    중앙일보

    1982.01.30 00:00

  • (6)-혁명전야⑤

    육사8기 중심의 거사준비는 박정희 소장도 참가한 2차 회합으로 본궤도에 오른다. 이로부터 이듬해 5·16까지의 6개월 동안 고비를 겪기는 하지만 이상할 이 만큼 순탄했다. 육사출신

    중앙일보

    1982.01.22 00:00

  • 독립10년간 쿠데타기회만 8번(방글라데시)

    면적 14만km에 인구 9천만명. 1인당 국민소득 1백달러. 10년전 독립한지 4년만에 초대통령을 쿠데타군의 총격으로 잃고 여덟차례의 쿠데타시도를 경험한 방글라데시는 두번째대통령도

    중앙일보

    1981.06.01 00:00

  • 제2「시베리아」철도 2연당겨 81년 완공

    【동경11일로이터합동】소련은 중·소분쟁격화와 관련, 태평양과 소련의 「유럽」지구를 연결하는 생명선인 현존 「시베리아」횡단 철도가 전쟁발발시 중공에 쉽게 차단되리라는 판단에서 그보다

    중앙일보

    1979.05.12 00:00

  • "턱밑까지 뻗친 마수"…분노의 소리|북괴 제3땅굴 발견|맞굴뚫자 지하수 펑펑

    【서부전선 땅굴현장=권순용기자】 단풍으로 물든 산등성이한쪽이 온릉 파헤쳐진채 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나오는 북괴의 제3땅굴어귀-. 북괴측 초소에서 파내려간 대량기습용 제3땅굴이 화강

    중앙일보

    1978.10.27 00:00

  • 5만여 군인·민방위대|이리재건에 앞장

    『군인아저씨들 수고 많았습니다.』13만 이리시민들은 피해복구작업은 물론 이재민 천막촌건립·긴급의료활동 등 이리시민 돕기에 나선 국군장병들에게 감사하고 있다. 이리참사의 복구작업 중

    중앙일보

    1977.11.28 00:00

  • 16년 전의 5·16혁명주체 지금 어디에

    5·16혁명 16돌이 다가왔다. 혁명을 밀의·조직하고 거사했던 이른바 「혁명주체」들도 당시의 30대·40대에서 어느덧 50, 60대의 고개를 넘어섰다. 「주체」의 정확한 수나 범위

    중앙일보

    1977.05.14 00:00

  • 스페인 게릴라 처형현장

    「스페인」경관 살해혐의로 기소되어 군 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던 이들「스페인」지하혁명조직 또는「바스크」지방 분리주의 운동 자들인 젊은 5명의 사형수들은 사형이 확정된 후 12시간이내

    중앙일보

    1975.09.29 00:00

  • 미륙군 쿠퍼공병차감 내한

    ○…10일 업무협의차 내한한 미육군공병차감「케네드·B·쿠퍼」소장(55)은 귀빈실 입구에 줄지어선 서울봉영여상 합창단의 「환영의노래」를 듣고 한국말로 『감사합니마』『대단히 좋습니다』

    중앙일보

    1975.07.12 00:00

  • 제2터널 내부 상태 판명

    중부 전선 철원 동북쪽 13km 비무장지대 「유엔」군 측 지역 안에서 북괴가 제2의 지하「터널」을 구축하고 있는 사실이 우리측의 차단 「터널」 공사가 성공함에 따라 완전히 밝혀졌다

    중앙일보

    1975.03.25 00:00

  • 친·반정부군 유혈 충돌

    【아디스아바바 8일 AFP 동양】이디오피아의 친정부군과 반정부군인들간에 7일 대규모 유혈 충돌이 일어나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함으로써 군부내의 심각한 내분이 처음으로 노출되었다.

    중앙일보

    1974.10.09 00:00

  • (423)지원작전(9)|공병(3)

    공병의 보병전투는 50년7월 하순부터 9월초 사이의 낙동강 방어전에서 그 절정을 이루었다. 특히 제1201 건 공단과 제8사단 공병대대는 구산동 전투와 영천작전을 통해 전사에 길이

    중앙일보

    1973.02.09 00:00

  • (422)|지원 작전 (8)|공병 (2)

    1949년 종래의 보병 여단들이 사단으로 승격되자 그해 5월부터 9월 사이에 7개 사단 공병 대대가 창설됐다. 전투 공병으로서의 사단 공병 대대는 보병 진격에 앞서 지뢰를 제거하고

    중앙일보

    1973.02.07 00:00

  • (421)지원 작전(7)

    (1) 공병은 다른 병과와는 달리 「기술」과「전투」를 겸하는 준 전투 병과로서 도로를 보수, 확장하고 교량을 가설하며 축성 공사 등으로 보병 부대를 지원하는 본연의 임무와 더불어

    중앙일보

    1973.02.05 00:00

  • (411)|우방 참전부대(12)|호주·「뉴질랜드」군

    육·해·공 3군을 모두 참전시킨 호주와 육·해군만 보낸 뉴질랜드는 서로 공동보조를 취하며 한국전 3년을 치렀다. 그것은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의 관계처럼 양국도 당시 외교·군사·경제면

    중앙일보

    1973.01.04 00:00

  • (393)|피 어린 산과 언덕(17)|적근산 전투

    중공군은 휴전을 바로 눈앞에 두고 53년5월27일과 7월13일 두 차례에 걸쳐 화천 북방의 한국군 제2군단 지역과 금성·금화지구의 수도사단·제9사단지역에 대공세를 가해왔다. 이 같

    중앙일보

    1972.11.13 00:00

  • (387)피어린 산과 언덕(11)|백마고지 전투(2)|고지 쟁탈전

    철의 삼각지대 전투는 52년 1백50「마일」의 한국전선에서 벌어진 고지쟁탈전 중 가장 치열한 싸움이었는데 이 중에서도 백마고지 전투는 그 압권이라고 할 만하다. 1951년 11월2

    중앙일보

    1972.10.26 00:00

  • (384)|피어린 산과 언덕(8)|가칠봉 전투-고지 쟁탈전

    한국군 제3사단은 피의 능선을 점령한 후 「펀치볼」북방의 1052·가칠봉·l21l·1320고지 등에 달려 붙어 격전을 거듭하던 제5사단과 51년10월 중순 진지를 교대, 공산군과

    중앙일보

    1972.10.19 00:00

  • (342)유격전(11)

    (2) 중공군 개입으로 유엔군이 임진강선까지 후퇴하자 그동안 구월산에 잠입, 준동하던 괴뢰군 1개 연대 병력은 장련·은율·안악·신천·송화·장연 등지를 차례로 기습해 왔다. 이 지역

    중앙일보

    1972.06.27 00:00

  • (318)-하늘의 전쟁(9)

    (1) 1951년10월11일부터 53년7월27일에 휴전협정이 조인될 때까지 한국 공군의 출격 작전은 거의 강릉 기지에서 감행되었다. 10월l일에 사천에 본부를 둔 제1전투 비행단의

    중앙일보

    1972.04.24 00:00

  • (416) | 경무대 사계 (43)|황규면

    임시 관저로 마련된 충남지사 관저에 들어가서야 우리는 식사를 들었다. 그리고 보니 아침·점심을 꼬박 굶은 채였다. 조금후 막 대전에 온 「무초」 미 대사가 대통령을 찾아왔다. 「

    중앙일보

    1972.03.24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