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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 일녀 왕래 추구
【동경 14일 합동】일본 정부는 14일의 정무차관 회의에서 북송된 일본인 처들의 일시 귀국이 실현되도록 노력하기로 결정했다. 이날의 차관회의는 지난주의 회의 결정에 따라 외무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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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번 일 학사원장 19일 위암으로 별세
【동경20일 로이터합동】일본 학사원 원장으로 동경대학총장을 지낸 저명한 정치학자 「남바라·시게루」옹이 19일 위암으로 동경의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84세. 정치학 및 정치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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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의 일-중 전쟁 상태 종결|전중 방중의 의의와 현안의 문제들
【동경=박동순 특파원】25일 개막되는「다나까」-주은래 정상회담으로 일본과 대륙중국사이에 존속했던 4반세기의 전쟁상태가 종막을 고한다. 이로써 동북「아시아」에서의 22차 세계대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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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7)제26화 경무대 사계 여록 내가 아는 이 박사
(중) 주미대사로 근무한지 얼마 안돼 나는 뜻밖에도 『한일회담 수석대표로 임명됐으니 빨리 귀국하라』는 본국 정부의 훈령을 받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박사를 도와 독립운동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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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9)제26화 경무대 사계(66)
미국의 휴전 추진으로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가운데 52년11월5일 미국 대통령에 공화당 후보인 「아이젠하워」원수가 당선됐다. 「아이크」는 선거 공약으로 『53년 「크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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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휴전회담의 개막(15)
공산측은 8월22일 밤중에 미 공군기가 개성회의장의 중립지대를 폭격했다고 주장했으나 조사결과 이는 전혀 허위날조임이 드러났다. 그들은 밤중에 급히 공동조사를 요구하여 급조증거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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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휴전 회담의 개막-전반부(2)|말리크 시의 배경(2)
미 행정부 요인이 처음으로 38선 휴전에 동의를 비친 것은 「유엔」사무총장 「트리그브·리」가 한국 휴전을 종용한 바로 다음 날인 1951년6월2일이었다. 이날 한국 전쟁과는 여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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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맥아더 원수 해임(2)|웨이크 토 회담(1)
맥아더 원수의 대만방문이 가져온 파문이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이와 비슷한 사건이 같은 8월에 일어났다. 고익 보수 색채가 짙은 미 해외참전재향군인회(Veterans of For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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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원 사이밍턴위원회 대한 증언
【워싱턴15일동화】다음은 지난 2월24일부터 26일까지 3일간 실시된 미상원 외교위원회 「사이밍턴」소위원회의 한국문제에 관한 비밀언에서 한국안보, 한국군의 파월, 미국의 대한방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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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어떠한 도발에도 한국방위"|미 상원 사이밍턴 위원회 대한증언
【워싱턴13일동화】다음은 지난 2월24일부터 26일까지 3일간 실시된 미 상원외교위원회 사이밍턴 소위원회의 한국문제에 관한 비밀증언에서 한국안보, 한국군의 파월, 미국의 대한방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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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김을한|해방에서 환국까지
동경에 있는 영친왕의 저택이 국 유니까 즉시 반환케 하라는 이대통령의 성화같은 독촉에도 불구하고 김용주 공사나 신성모 대사는 당시 일본정부의 견해나 스캡(연합국최고사령부)의 바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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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감축론과 대미교섭
최근 외지들은 또다시 주한미군의 감축문제에 대해서 상당히 구체적인 보도를 싣고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지금까지 풍문에 떠들썩했던 주한미군 감축논의는 한발짝 더 나가서 차차 본격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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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 안보 10년|그 그늘서 비대한 일본 자동연장의 언저리
전후 일본경제발전의 요인이 되었던 미-일 안보조약은 오는 22일로써 고정기간(10년)이 끊긴다. 그러나 미-일 양국정부는 동조약 10조의 규정에따라 자동연장하기로 합의하고 있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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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통령 오늘 귀국
【요세미티=이억순 특파원】박정희대통령은 「닉슨」미국대통령과의「샌프란시스코」한미정상회담과 「요세미티」국립공원에서의 주말휴양을 포함한 5일간의 방미일정을 끝내고 24일 낮12시반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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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아·태 시대의 웅도를 그리며…
「닉슨」항정부가 새로 들어선 이래 한미양국대통령의 첫 대면인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미국의 새로운 대「아시아」정책에 대한 견해조정과 함께 한국의 장기안보와 경제건설을 위한 미국의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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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방위조약 재확인
【샌프란시스코=이억순특파원】박정희대통령과 「닉슨」미국대통령은 두차례의 한미정상회담을 마치고 22일 낮12시(한국시간23일 새벽4시) 공동성명을 서울과 「워싱턴」에서 동시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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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닉슨 공동성명 전문
「리처드·닉슨」미합중국 대통령 각하의 초청으로 박정희대한민국대통령 각하와 동영부인은 1969년 8월21일부터 22일까지 미국「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다. 양국대통령의 회담은 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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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추방 조항 완화
【동경=조동오특파원】재일교포들이 줄기차게 반대투쟁을 벌여온 일본의 「출입국관리법안」 은 여당인 자민당이 11일 강제추방조항등을 완화하는 수정안을 마련, 교포들이 반대하는 독소조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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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수교 어제와오늘|셔만호 사건에서 미의원단 대거 내한까지
「칼·앨버드」미국하원민주당원내총무등 22명의 미하원의원단이 우리국회초청으로 1주일간 방한키위해 오는3월2일 한국에 온다. 정부는 이들로하여금 한국의 경제발전·국방태세· 의회제도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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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7)
수십년을 일본땅에 묻혀살고 또 그런부모사이에일본에서태어난재일교포에게 협정이니영주권이니하여 그들이 일본에 머무를수있는「법적지위」를 말해도도시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 저 살던 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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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통계에 비친 실태
【동경=강범석특파원】제일교포 60만명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이숫자는 일본의 「외국인등록법」에 좇아 절차를 밟은 등록자의 대략수이며,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재일교포는 더 정확히는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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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슬금슬금 재군비|「자위」내걸고 증강
일본의 군사력은 「자주적 방위 체제」를 표방하고 명년부터 총 규모 2조7천억 원의 이른바 제3차 방위력 정비 계획에 들어서게 되었다. 한국 동란이 터진 바로 2주일 후인 19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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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수교전야]그 실태|일본땅에 [남과 북]
[동경=심상기특파원]한·일 국교정상화를 눈앞에 보는 재일교포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그들이 건너야 할 강은 아직도 갈래갈래 찢겨져 있다. 일본전국에는 약 58만명의 한국교포가 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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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계의 수립
「한·일 회담의 종착역=한·일 양국간의 외교관계 수립」- 14년에 걸친 한·일 교섭은 두 나라가 끊어진 우정을 다시 잇고 선린우호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외교관계의 수립에 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