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하고 싶어 하는 줄 알아?” 박정희는 JP를 의심했다 (66) 유료 전용
1978년은 유신헌법 2기의 대통령선거(7월)와 제10대 국회의원 총선(12월)이 있는 해였다. 통일주체국민회의가 뽑는 6년 임기의 대선엔 박정희 대통령의 재출마가 당연시됐다.
-
JP “박정희 3선 마지막” 유세…그때는 유신 상상도 못 했다 (49) 유료 전용
1969년 3선개헌(三選改憲)으로 가는 길목에서 박정희와 김종필(JP)은 충돌했다. 68년 봄 JP는 ‘자기 자리를 넘본다’는 박정희의 의심 속에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야인이
-
노발대발 박정희 “잡아들여!”…‘항명’ 김성곤 콧수염 뽑혔다 (41) 유료 전용
1969년 3선 개헌을 주도한 민주공화당의 4인 체제(김성곤·백남억·길재호·김진만)는 기세가 등등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3연임을 성공시킨 이들의 세력은 공고해 보였다. 하지만 4
-
“박정희 충성 혈서 쓰겠다” TK의 탄생, 내가 자초했다 (40) 유료 전용
내가 두 차례 외유(外遊)하는 동안 정치 지형은 빠르게 재편됐다. 구정치인 출신인 대구·경북(TK) 세력이 나의 빈자리를 치고 들어왔다. 1965년 말 나는 민주공화당 당의장으로
-
“자네 하려는 거, 그거 하자”…박정희와 ‘지프차 혁명언약’ (6) 유료 전용
「 “지금 생각해도 참 당돌했어.” JP가 정군(整軍)에서 5·16에 이르는 긴박했던 순간을 회상하면서 떠올린 말이다. 그 대담함은 박정희와 ‘지프의 혁명언약’으로 발전한다. 」
-
[삶과 추억] 71년 ‘10·2 항명 파동’ 희생양 오치성
오치성 박정희 정부에서 내무부 장관을 지낸 오치성(사진) 전 의원이 9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91세. 황해도 신천 출생인 고인은 육군사관학교 8기 출신이다. 동기인 김종필(J
-
(삶과 추억)공화당 4인방과 일전 불사했던 오치성 전 내무부장관
오치성 전 내무부 장관.[중앙포토] 박정희 시대 ‘친위 개혁자’로 평가돼 온 오치성 전 내무부 장관이 9일 오후 노환으로 별세했다. 91세. 고인은 황해도 신천 출신으로
-
[심층연구] 김종필 증언록과 현대 정치사의 새 쟁점
[월간중앙] 신화와 전설이 사실 또는 거짓으로 밝혀질 때, 새로운 진실이 오래된 거짓을 대체할 때가 있다. 한국 현대사의 영역에서도 그런 바람이 불고 있다. 연재 풍운아 김종필의
-
[5·16 50년] 50년 전 ‘그 날의 주역’ 그들은 지금 …
5·16 은 대한민국의 권력지형을 바꿔 놓는다. 군인 출신들이 속속 권력의 주무대에 등장했다. 주도자인 박정희 소장(2군 부사령관·육사2기)은 3공화국 대통령이 된 뒤 1979년
-
[이호의 ‘충격 秘史’ ] 3선개헌 직전 ‘이만섭 폭탄발언’ 막후 ②
①에서 이어짐 제3공화국 시절 정치적으로 가장 많은 적을 만들면서 가장 깊숙하게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할 수 있는 김형욱 중앙정보부장과 이후락 대통령비서실장을 물러나게 했던 이른바
-
[바로잡습니다] 1월 11일자 31면의 (노트북을 열며)에서
1월 11일자 31면의 (노트북을 열며)'유시민, 현실주의와 싸가지'에서 "김성곤씨의 코털이 뽑혔다는…"의 '코털'을 '콧수염'으로 바로잡습니다. 공화당 4인방 항명사건은 1971
-
[노트북을열며] 유시민, 현실주의와 싸가지
유시민 의원의 보건복지부 장관 지명이 몰매를 맞고 있다. 대통령의 장관 지명이 여당에서까지 이렇게 비난받는 것은 아마 전무후무할 것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김성곤씨의 콧수
-
[남기고] 으랏차차 '88세 청년' 36. 태릉선수촌
태릉선수촌 건립 공사는 몇 단계에 걸쳐 진행됐다. 사진은 1967년 4월 26일 열린 선수 합숙소 기공식 모습. 1970년 6월 30일 청와대에서 편지가 왔다. 박정희 대통령이 직
-
[장관 해임안 역대 사례]
우리 헌정사에서 장관 해임건의안은 30건이 표결됐으며 이중 3건이 가결됐다. 1955년(3대국회) 임철호 농림장관(불신임 결의안), 1969년(7대국회) 권오병 문교장관, 1971
-
['4.7반란'과 '오치상 파동']
여권의 '4.7 반란' 충격은 71년 당시 집권당인 공화당 4인체제가 박정희 (朴正熙) 대통령과 김종필 (金鍾泌) 총리를 상대로 벌인 '10.2 항명파동' 과 여러모로 비교된다.
-
14. 박정희 대통령의 공천방식
국회의원 후보를 내는 공천(公薦)은 널리 인재를 발탁하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후보는 당선되면 입법부를 구성하게 되니 누구를 공천하느냐 하는 것은 국가지도층의 수준에도 많은 영향을
-
대선 선대위원장|후보약점 메워주는"얼굴마담"
한 원로정치인은 선거대책위원장을 가리켜『비단을 걸친 뱀』이라고 표현했다. 겉보기엔 화려한 것 같지만 알맹이가 별로 없다는 얘기다. 선거 때만 되면 각 당에는 선거대책위가 차려지고
-
(40) 권부의 파워게임|"서로 먼지 한번 털어볼까"
71년 4월 중순 7대 대통령 선거를 1주일 앞둔 어느 날 저녁. 청와대와 인접한 궁정동 안가에는 당정의 핵심인사들이 모여 막바지 선거전략을 짜고 있었다. 백두진 국무총리·김학렬
-
「표밭갈이」지휘하는 선거사령탑
선거대책본부장은 선거의 야전사령탑이다. 정당의 기본 존재이유와 목표가 정권창출이라는 점에서 선거 지휘탑을 맡는 본부장은 화려한 각광의 자리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 선거본부장은「킹
-
(10)JP와 군부|개혁주도세력 JP행적에 불만|63년 군정과정서 한때 거사세도
80년 서울의 봄이 안개정국에 맴돌다 만 것은 집권세력이 구심점을 만들어내지 못한데도 원인이 있다.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은 권한은 넘겨받았지만 권력기반이 없었다. 바람직한 일은
-
정구영 회고록 「실패한 도전」2부
3선 개헌의 징조는 불행하게도 67년 선거에서 때 이르게 나타난다. 박대통령의 1번 승계자 김종필에 대한 견제, 그리고 국회의원 선거의 관권·물량공세다. 그 얘기. 경기북부지역 유
-
(11)"JP사단,참모들이 와해 자초"
공화당 권력의 2인자였던 금종비이 기약 없는 외유로 내불리면서 염려했던 일은 권력 내부질서의 변동이다. 그때문에 그는 주류파 12인 회의도 만들고 사무국요원들에게도 특별한 당부의
-
정구영 회고록 「실패한 도전」2부
"사후 공개"조건… 전공화당의장의 정치비화 녹음중계 제2부를 연재하면서 공화당 초대총재였던 정구영씨의 회고 「실패한 도전」 제2부를 연재한다. 정씨는 3선개헌 저지에 실패하고 사실
-
미서 신병치료받고 귀국
◇길재호 전 공화당 사무총장이 약 50일간 미국 뉴욕주 마운트시나이 병원에서 신병치료를 받고 최근 귀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