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 앞에서 3선개헌을 지지하기로 한 뒤 나는 어제까지 개헌 반대에 뜻을 모았던 동지들을 설득해야 했다. 박 대통령을 모시고 혁명을 한 업보(業報)로 조국 근대화라는 혁명의 목적을 기어코 이루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개헌을 하려면 재적의원(171명)의 3분의 2(114명)가 찬성해야 한다. 그런데 당 내 개헌 추진 세력인 4인체제와 이후락 비서실장, 김형욱 정보부장이 총동원돼 찬성 서명을 받은 의원은 90명에 불과했다. 25명 정도가 부족했다. 당 내 개헌 반대 의원들을 찬성으로 돌려놓지 않으면 박 대통령의 뜻이 꺾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1969년 3선개헌(三選改憲)으로 가는 길목에서 박정희와 김종필(JP)은 충돌했다. 68년 봄 JP는 ‘자기 자리를 넘본다’는 박정희의 의심 속에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야인이 된 JP는 박 대통령에게 ‘내가 나세르냐’며 대들기도 했다(47회 참조). 69년 여름 박정희는 ‘혁명 의리론’과 눈물로 JP를 설득했다(48회 참조). JP는 그의 손을 다시 잡았다. 개헌 반대에서 개헌 지지로 선회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