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권부의 파워게임|"서로 먼지 한번 털어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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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71년 4월 중순 7대 대통령 선거를 1주일 앞둔 어느 날 저녁. 청와대와 인접한 궁정동 안가에는 당정의 핵심인사들이 모여 막바지 선거전략을 짜고 있었다.
백두진 국무총리·김학렬 부총리·박환원 내무·신직수 검찰총장 등 내각 팀과 길재호 사무총장·김성곤 재정위원장·김창근 대변인으로 구성된 공화당 그룹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물론 사실상 선거작전을 주도하던 이후락 부장·강창성 보안차장보 등 중정 지도부의 얼굴도 보였다.
그날 회의가 대충 마무리되고 있을 때 청와대에서 김정렴 비서실장이 내려왔다. 손에는 자그마한 종이박스가 들려있었다.
『각하께서 선거결과를 한번 알아 맞혀보라고 하셨어요. 신민당 김대중 후보를 몇 표 차로 누를지 말이예요. 각자 자기이름하고 예상표차를 적어 이 상자 안에 집어넣으세요. 각하께서 선거가 끝나면 직접 열어보시겠답니다. 1등에게는 후한 상금이 있대요.』
당정 인사들은 모두 긴장된 표정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대통령의 신임이 걸린 문제이니 장난 삼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선거다음날인 28일 청와대에서는 각료·청와대 참모·공화당의원 다수가 모인 가운데 「시상식」이 있었다. 5백만 원의 거금을 움켜쥔 주인공은 김학렬 부총리였다.
김씨의 판단은 실로 족집게였다. 개표결과는 94만 8천 표차였고, 김씨의 예상은 「90만 표」. 제갈조조 이후락 부장도 2백만 표로 멀찌감치 비껴갔고 길총장·김재정 위원장 등은 2백30만∼2백50만표로 어림없었다.
쓰루(김부총리의 애칭·학의 일본말)의 컴퓨터 계산에 대해 부인 김옥남 여사(62)는 『주인양반은 경제기획원 통계국과 고려대 J교수 등을 통해 사전에 정확히 조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와 달리 당시 정보부에 몸담았던 Q씨는 『쓰루는 나에게 자문을 구했고 결과가 딱 들어맞자 나중에 상금 중 2백만 원을 나눠주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대통령 시험도 보지">
경위야 어쨌든 쓰루에 대한 박대통령의 신임은 이 무렵 최고조에 달했던 것 같다. 대선용 정차자금을 상당부분 쓰루에게 맡겼던 것도 이때의 일이었다.
유대가 얼마나 허물없었던지 박대통령은 다른 부하에게 아끼던 농도 던지곤 했다고 한다. 쓰루가 경제기획원 관리들에게 승진시험을 자주 보게 하자 박대통령은 『임자도 대통령시험 한번 보지 그래』라고 했고 쓰루는 『다른 건 몰라도 시험이라면 대통령도 자신 있다』며 받아넘겼다는 일화도 있다.
이렇듯 박대통령이 쓰루의 등을 두드려주니 2인자 그룹 내에는 신경전 깨나 벌어졌던 모양이다. 그 중에서도 쓰루에게 제일 눈을 흘겼던 이는 HR(이후락)였다. 「박정희교」의 일등교주를 자처하던 그였으니 쓰루에게 자존심이 상할 법도 했다.
쓰루-HR 긴장관계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는 쓰루측근 Q씨의 증언

<"정보부의 짓이다">
『박종규 경호실장이나 김동욱 전 부장은 쓰루하고 잘 지내려고 했어요. 박대통령하고 쓰루가 보통이상으로 친하다는 걸 잘 알았으니까요. 경호상 수틀리면 장관에게 주먹질을 해대던 박 실장도 쓰루는 깍듯이 대접했죠. 그리고 김 전부장은 자녀를 김 부총리 아이들과 같이 과외공부시킬 정도로 친선관계를 유지했지요.
그러나 HR는 달랐어요. 원래 꾀 많은 사람이라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박대통령의 총애를 빼앗기 이해 꼼수를 많이 부렸죠. 어찌나 집요했던지 쓰루가 이를 눈치채고 마구 화를 내도 그치질 않았어요.』
Q씨는 『쓰루는 자신의 직선적인 성격을 감추지 못해 곧잘 HR을 찾아가 담판을 짓곤 했다』며 이런 일화를 들려주었다.
『71년 대선전 혜화동 집에 수상한 도둑이 들었을 때도 쓰루는 대번에 「정보부 짓」이라고 단정짓고 HR에게 달려갔질 않았습니까. 그때 김 부총리 부인이 「당신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이 부장을 당할 수 있겠느냐」며 싸움을 말렸는데도 쓰루는 뿌리치고 정부종합청사 꼭대기에 있는 정보부장실로 갔지요.
쓰루는 「이부장. 당신 칼도 잘 들고 내 칼도 잘 드는데 한 번 같이 뽑아서 겨루어 볼까요. 둘 다 다치기 전에 잘 지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라고 몰아 붙였다죠.
노련한 HR은 쓰루의 외투를 직접 받아 걸어주는 등 유화제스처를 쓰면서 「나는 도대체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했지요.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HR가 쓰루를 직접 칠 수 없으니 비서실 사람을 비롯해 주변을 조사한다는 이야기가 들렸죠. 부하들로부터 뭔가 죄어온다는 보고를 듣고 쓰루는 또 HR에게 달려갔어요. 「좋아요. 당신 부하 중에서 5명을 고르고 내 부하 중에서 5명을 골라 서로 한번 조사해봅시다. 어느 쪽이 더 먼지가 많이 나는지 털어보잔 말이오」라고 결투신청(?)을 했다는 거죠. HR은 이번에도 「도대체 누가 그런 소리를 하느냐」며 쓰루를 달랬어요.』

<회의서도 자주 견제>
이부장의 권세가 아무리 막강해도 쓰루는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으니 거침없이 대적하려 했다고 한다. 궁정동 대책회의의 멤버였던 모씨의 증언.
『회의에서도 쓰루는 HR를 곧잘 견제하곤 했어요. 원래 그 회의는 HR가 독주하다시피 했는데 쓰루는 HR이야기가 맘에 들지 않는다 싶으면 옆 사람에게 슬쩍 메모쪽지를 집어주곤 했지요. 메모엔 「조조」라고 적어 HR를 비꼬는 거예요.
그러다가 HR의 독주가 계속 되면 쓰루는 대번에 입을 열더라고요. 「이것은 이거고 저것은 저거 아니냐」며 언쟁도 불사했지요.』
파워게임은 쓰루-HR 대결뿐만이 아니었다. 때로 다른 측근도 가세해 3파전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그중 굵직한 사람은 홍종철 사정담당특별보좌관이었다.
홍씨는 육사 8기 혁명주체로 최고회의시절 김동욱·길재호 씨와 함께 친JP계의 김-홍-길 라인으로 불렸다. 잔재주가 없고 우직한 성격이었던 홍씨는 71년 7월 김 부총리의 천거로 사정특보로 임명되었다가 74년 6월9일 낚싯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한강에서 익사해 박대통령의 가슴을 미어지게 했던 인물이다.
쓰루-HR-홍특보 3인의 미묘한 힘겨루기가 첩보영화처럼 얽혔던 사건이 하나 있다. 이 일에는 제4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는 「왕초」장기영 부총리 시절부터 경제기획원 엘리트관료로 뼈가 굵어 국장·차관보까지 지낸 Z씨다. Z씨는 한때 정치자금을 주물렀던 HR·김동욱·SK(김성곤)·왕초의 4인협의체와 인연을 맺어 3공 정경비사의 열쇠를 쥐고있는 인물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18면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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